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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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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유연성 제고에 초점 맞춰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03 07:54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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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수립 중이다. 현재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겠지만
보고서 작성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동안 전기본은 몇 차례 성격의 변화가 있었다. 1990년대 비용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확정적 계획’(plan)에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에는 전기사업자의 자율적인 발전소 건설 의향을 받아 ‘전망’(outlook) 형태로 바뀌었다. 제 1·2차 전기본은 전력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을 반영했다. 사업자들이 제출한 발전소 건설 의향을 ‘사업별 진척도 및 실현성의 수준’을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고, 건설의 불확실성이 비교적 낮은 등급의 설비가 발전소 건설계획에 반영됐다. 이렇다 보니 수립된 계획은 적정 예비율을 크게 넘어서며 설비과잉문제가 제기됐고 전기본의 성격이 다시 수정됐다. 제3차 전기본 이후에는 적정 설비규모 유도 등 정부 정책기능을 강화하는 형태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 시장기능의 강화, 전기본 이행의 불확실성 제고 등을 이유로 또 다시 전망 형태로의 성격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기본의 성격이 시장중심, 전망 중심으로 전환되면 전력수급의 적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 발전사업을 하려는 사업자는 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 지정 → 환경영향평가 →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 승인 → 전기설비공사계획인가의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11개 중앙부처와 발전소 입지 지역의 지자체, 지역 주민 등과의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은 여기에다 원안위의 건설허가, 운영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1978년 당시 정부는 절차 간소화를 위한 ‘전원개발 촉진법’을 제정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증가, 농어촌 근대화 등으로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신속하게 위해서다. 법 제정 후 10년 만에 전력설비가 3배로 늘어나며 전력공급 문제 해결과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전기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산업부의 실시계획 승인을 받으면 21개 법률에 대해 허가·인가·면허·결정·지정·승인·해제·협의 또는 처분 등을 받은 것(의제)이 된다. 하지만 실시계획의 승인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설비가 전기본에 포함돼야 한다. 전원개발촉진법 제2조 3항에는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이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전원개발사업의 실시에 관한 세부계획"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전기본에 포함되지 못한 발전소는 전원개발촉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시장 또는 전망 성격의 전기본에 의해 발전사업을 하려는 사업자는 실시계획을 취득하기까지 정부 유관부처와 수많은 관계법령, 지자체와 협의 등 규제과정의 어려움으로 발전소 건설기간이 한 없이 길어질 수 있다. 또 건설허가를 취득한 사업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적정 전력수급이 불안해 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행 전기본 수립 체계를 유지하되 보고서 내용에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방식은 제한적으로 적용된 사례도 있다. 2017년 말 수립된 제8차 전기본(35페이지)에는 참고표시(※)로 "월성 1호기 : 내년 상반기중 경제성, 지역 수용성 등 계속 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폐쇄시기 등 결정 → 원안위에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변경 허가 신청 등 법적 절차 착수"로 조기폐쇄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 2018년 6월 월성1호기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구 정지됐다. 당시에는 전기본의 참고 표시가 훗날, 그리고 현재까지도 파급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탈원전 정책이 폐기된 후 수립된 제10차 전기본에는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 이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재개가 반영됐을 뿐 후속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것이 제11차 전기본 조기 수립 이유라는 주장도 있다. "원전 후속기에 대한 검토와 신규사업을 준비한다"는 정도의 언급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제11차 전기본에 i-SMR이 반영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i-SMR은 기술개발 중이므로 전기본에 반영할 수 없다. 그러나 11차 전기본에 "신규원전은 기술개발 진전 상황을 고려하여 i-SMR로 대체될 수 있다"고 기술해 놓으면 문제가 될까? 전기본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계획을 유연하게 수립할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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