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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異說直告]에너지 포퓰리즘 뒷감당은 누가 하나

이진 논설위원 입력 2017-04-21 03:00수정 2017-04-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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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논설위원
올해 1월 말 독일이 대규모 정전사태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하나 남아 있던 예비 발전소를 가동시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원인은 전체 발전량의 29%를 차지하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제 기능을 못 한 탓이었다. 그날따라 바람도 잠잠했고 해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두 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신재생 발전기들이 맥을 못 추자 전력 예비율이 일시에 바닥나 버렸다. 풍력이나 태양광이 ‘천수답 발전’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사례였다.

먼 나라 일이라고 심드렁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 지지율 1, 2위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발전의 탈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건설 중인 원전 신고리 5, 6호기는 공사를 중단하고 원전 신규 건설 계획은 백지화하겠다는 것이다. 30년 또는 40년의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들은 연장하지 않고 바로바로 멈추겠다고 했다.

한계 드러낸 獨日 원전 폐기


두 후보는 화력발전도 미세먼지를 내뿜는 원흉으로 본다. 문 후보는 30년 지난 노후 석탄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하고 새 석탄발전소는 짓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쿼터제를 도입해 석탄발전소의 가동을 제한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다. 모자라는 전력을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생각은 서로 같다. 두 후보가 바라보는 방향이 사실상 일치하다 보니 주장과 반박, 재반박이 오가면서 상호 검증할 여지는 사라졌다.


이런 공약이 실행된 한국의 미래는 독일과 일본의 오늘이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17기 중 8기의 운영을 중지했고 남은 9기는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한다는 일정을 밟아가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의 당사자인 일본은 원전 50기의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원전 제로’의 극약 처방을 단행했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원전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화력발전이다. 가스를 포함한 화력발전 비중이 독일은 50%를 넘고 일본은 90%에 가깝다. 원전 대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생긴 현상이다. 신재생 발전은 비상용 대체 발전소를 여벌로 갖춰야 하는 이중의 부담도 따른다. 석탄, 가스 수입과 신재생 에너지 보조금 부과 등으로 인한 전기요금의 가파른 인상, 다량의 온실가스는 덤으로 따라왔다. 독일은 전기요금이 유럽에서 가장 높게 치솟자 2014년 신재생 에너지 증가세를 낮춰야 했다. 신재생 비중이 3% 정도인 일본은 슬금슬금 원전을 다시 가동하고 있다.

비현실 공약은 독약 될 수도

9·12 지진으로 원전의 안전성에 의구심이 커지고 미세먼지에 짓눌리는 국민 정서를 대선 후보들이 지나칠 리 없다. 하지만 어떤 처방을 내리느냐는 별개 문제다. 원전과 석탄발전을 축소 또는 백지화하겠다는 것은 선발 주자인 독일과 일본의 현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눈을 감거나 둘 중 하나다. 두 후보의 공약에서는 후발 주자의 고민보다는 국민 불안에 편승하려는 셈법만 읽힌다.

두 후보의 공약이 피상적이라는 지적은 점잖은 편이다. 구호나 선동과 뭐가 다르냐는 혹평까지 들린다. 한국은 원전과 석탄발전을 합한 비중이 70%에 이르고 신재생 발전은 4%에 불과하다. 당장 귀에 솔깃한 공약을 따르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안보나 교육 못지않은 중요한 에너지 정책을 현재 기술 수준에서 5년 단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것은 섣부르다는 뜻이다. 이를 무시하고 덤벼들다가는 독약을 삼키는 꼴이 될지 모른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신재생 발전기#발전의 탈핵#신고리 원전#비현실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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