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탄소중립, 엉뚱한 데서 삽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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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에 혹독한 추위가 온다."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석탄·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으며 지구촌이 맞게 될 불길한 시나리오다. 최근 서유럽국들과 중국이 겪고 있는 극심한 전력난에서 그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에너지 재앙의 원인은 '그린플레이션'이다. 이는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이 오르며 물가를 압박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전 세계가 탈탄소·친환경 가속페달을 밟고 있지만 풍력·태양광 등이 에너지 수요를 못 쫓아가면서다. 이 바람에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대의를 거슬러 석탄·천연가스가 되레 '귀하신 몸'이 된 격이다.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은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후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대폭 늘렸다. 하지만 이들 신재생 발전소는 발전효율이 낮은 데다 늘 날씨가 족쇄였다. 올 들어 풍력에 세계 최적이라는 아일랜드 앞바다의 바람이 잦아들자 이 전력을 수입하던 영국 등에선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가 폭증했다.

지난 2월 전남 신안군에서 빚어진 해프닝은 그래서 불길하다. 당시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 협약식'에서 선보인 모형 풍력발전기의 진상이 며칠 전 밝혀지면서다. 날개의 회전에 필요한 초속 4m 정도 바람도 불지 않자 3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발전기 등을 투입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슴 뛰는 프로젝트"라고 했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전기를 소비하는 풍력"을 시연한 꼴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유럽의 에너지난을 "(탄소중립을 추진 중인) 전 세계에 주는 불길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화력발전의 대안으로서 신재생 발전이 한계를 드러냈다면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회원국 사이에서 탄소중립 속도조절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 이전에 탈원전을 표방했던 영국·이탈리아 등은 신규 원전 건설로 선회했다. 탄소중립을 향한 등정로가 잘못됐음을 이미 인식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모양이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8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상향했다. 그러자 산업계에선 "(막대한 비용이 들어) 현실적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크다"는 등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문가 집단인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도 탄중위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비과학적 선동"이라고 했다. 현재 6.6%인 신재생 발전 비율을 2050년까지 58.8%(2안)까지 올린다는 계획 등이 공허하다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을 깔기 위해 서울시 면적의 4.7배 부지를 확보하는 일 자체도 어렵고, 생산한 전력을 저장할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만 최대 1284조원의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병행·공존해야 순조로운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문 정부의 '신재생 맹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라면 다행이겠다. 탈원전 주술에 걸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을 닦겠다면서 엉뚱한 데서 삽질을 해선 안 될 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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