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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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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현실과 동떨어진 탄소중립시나리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9.01 11:45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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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계획안이 지난달 발표됐다. 정부의 행정이 그렇듯이 공청회를 거친다고 하여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이대로 최종안이 될 것이다.

기후온난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기후온난화를 야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산화탄소가 과연 인간의 기여 때문인지, 아니면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의 간빙기에 자연적으로 농도가 높아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다. 또한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만이 아니다. 대기중의 수증기나 천연가스로 알려진 메탄도 온실가스이다. 특히 메탄은 이산화탄소의 약 30배에 달하는 온실가스 효과라고 보고되어 있다.

1990년대 기후온난화 이슈가 부각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저의를 의심하였다. 기후온난화 이슈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무시받고 있다가 갑자기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대해 가장 유력한 설은 개발도상국이 국가산업을 개발할 수 없도록 선진국들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현재의 이산화탄소는 선진국이 개발과정에서 만들어낸 것인데 왜 모든 나라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서 교토의정서 이전까지 주로 선진 7개국이 기후온난화 대처에 책임을 지는 것으로 국제적 대응방향이 흘러갔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거꾸로 진행된 것이다. 그러자 적극적 대처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현재는 선진국이 아니라 온 세계가 동참하는 체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탄소중립을 인류의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를 빙자하여 다른 나라를 견제하고 재생에너지 장사를 하려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기후온난화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실제의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사회학적 문제처럼 축조된 가상의 문제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엔 IPCC(기후변화 국가간 패널)·미국·영국·프랑스 등이 탄소중립에 나서면서 이는 어떤 형태로든 강요받게 될 덕목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도 어느 정도 참여를 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현명한 대처는 국제적인 눈치를 봐가면서 자국의 산업과 경제에 큰 피해가 없는 방향으로 맞춰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이나 능력을 살피지 않고 탄소중립을 맹종하다 보면 고꾸라지는 일만 남는 것이다.

과연 태양광 발전소를 현재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전력의 다섯 배 규모로 깔아 버린다면 그 보조금은 얼마가 될까. 전기 요금은 얼마나 오를까. 국토는 또 얼마나 훼손되어야 할 것인가. 초단위로 들쭉날쭉한 전력생산을 제어할 기술적 능력은 있나. 이런 전력 불안정성에도 첨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풀어야 할 난제가 쌓여 있다.

몇 배 오른 전기요금을 개인이 부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산업이 부담하게 된다면 이것은 국제적인 산업경쟁력의 문제이다. 심지어 독일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산업용 전기를 낮은 가격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사실상 산업용 전기가 가정용 전기보다 더 비싼 상태가 되었다.

애초에 태양광 자원이 나빠서 설치해도 미국의 절반밖에 전력이 생산되지 않는데, 그런 발전소를 확대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니 무리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 발상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전력저장장치(ESS)를 설치하고 부족한 전기는 동북아그리드를 설치해서 중국과 일본에서 꿔오고 그래도 에너지가 부족해지자 수소의 80%를 해외에서 수입해오는 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2050 탄소중립계획(안)인 것이다.

전기는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다. 전기를 절약하는 것이 인생 목표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저녁을 먹을 시간적 여유가 확보되었지만 정작 저녁을 사먹을 돈이 없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

원래 에너지 정책은 안정적 공급이 목표이고 어떤 발전원을 통하여 공급할 것인가는 수단이다. 그런데 현재의 에너지 정책과 탄소중립정책은 목적을 잊고 수단에 집착하고 있다. 또한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요건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깨끗과 안전’이라는 이상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안전’은 원자력안전위원회, 그리고 ‘깨끗’은 환경부의 소관인데, 전문기관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산업부가 생각하는 깨끗과 안전이라는 것은 여론을 이론으로 만드는 인민재판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은 다수결이 아니다. 자원도 없고 좁은 국토에 인구는 많고 전력수요가 높은 것을 다 감안해서 원자력기술을 국산화해놓고 무슨 분탕질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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