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구체화하는 탈원전 불법성과 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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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천 중앙대 교수·법학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이 기소한 혐의는, 직권남용·업무방해·배임교사 등이다. 사건의 발단은 탈원전 공약에서 시작된다. 원자력 발전(發電)을 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선된 측의 공약이니 국민의 뜻이라고 하지만, 개별 정책에 대한 찬반투표를 한 게 아닌 이상 그렇게 말하는 건 무리다.

공약도 약속이니 지키겠다고 노력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약속이 국민 전체에 대한 약속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공약은 국민이 만든 게 아니라 후보자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선거에 승리했으니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고 오해하는 듯하다. 모든 일을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해야 한다는 원칙 따위는 애초에 그 사람들에겐 없었던 것 같다.

민주화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했던 일들이 당시 실정법에 의하면 금지돼 있었다. 언론 탄압에 대항하기 위한 유인물 제작, 집단적 의사표시를 위한 집회와 시위 등이 처벌 대상이었다. 경찰에 잡혀갈 것을 각오하면서 투쟁하던 대상을 부정·부패와 비리로 점철된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하더니 지금 보니 미워하면서 닮아 버렸다. 그러면서 독재 타도를 위해서 자신들이 처벌 대상 행위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그들 스스로 독재를 하면서 그것도 괜찮은 것이라고 우긴다. 그들은 스스로 법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이 바로 그 사례다.

월성원전 1호기 가동 중단과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 전 장관은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 의결만 거치면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당시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 와중에 채 전 비서관은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망에 올린 댓글의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때부터 채 비서관은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백 장관이 탈원전 반대 인사를 임기와 관계없이 교체해야 한다며 명부 작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또, 장관과 차관이 나서서 한수원의 사장과 부사장에게 ‘이대로 하지 않으면 자리를 보전하기 힘들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 전 사장은 임기를 1년10개월 남긴 시점에 사직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보고서 내용을 원하는 대로 작성하지 않는다고 장관이 담당 직원에게 막말을 하기도 했다. 감사원에서 현장 감사를 나가기 전날에는 담당 직원들이 밤 11시에 출근해 관련 자료 400여 건을 폐기했다. 이 사건 수사를 그대로 밀어붙일 것으로 보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옥죄고 사직시키기 위해 민주당 전체가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의 댓글을 보고 놀란 비서관이 장관을 닦달해서, 폐쇄하지 말아야 할 원전 가동을 중단시켰다면 댓글을 작성한 사람은 일이 이렇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을지 의문이다. 그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청와대가 탈원전 정책을 진두에서 지휘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청와대의 오만이 언제 끝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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