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기후위기대응법이라고? 與 강행처리한 ‘탄소중립·녹색성장법’ 내용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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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19. 오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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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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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처리하기 전인 1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기자회견 모습. 황인철 집행위원장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조차 없는 탄소중립법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다. 19일 새벽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된 법안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18년 대비 35% 이상’ 이라는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으로 명시됐지만, ‘녹색성장’은 법제명에 포함됐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35% 이상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안’을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단독으로 강행처리했다. 감축목표가 최근 국제적인 기대치에 크게 못미친데다 탄소중립과 양립하기 어려운 ‘녹생성장’까지 법안에 끼워넣으면서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법이 아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여당에서조차 지적이 잇따랐고, 급기야 민주당 소속 의원이 별도의 수정안까지 마련중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9일 사실상 여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안’을 의결했다.이 법안은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목표와 방향을 담은 국내 첫 탄소중립 법안이다. 하지만 탄소중립이 우리나라에 미칠 사회적·경제적 영향을 고려할 때, 이번에 의결된 법은 악화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보기엔 법안에 담긴 철학, 실현 방안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후위기 대응법’에 167번 등장한 ‘녹색성장’

제명에 ‘녹색성장’이 들어간 이 법안에는 부칙을 포함해 총 167번 ‘녹색성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법안은 녹색성장을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성장”이라고 정의한다. 제1조 ‘목적’에는 “기후위기의 심각한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강화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환경적·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의 육성·촉진·활성화를 통해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 한다고 명시됐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경제·산업구조에서 탄소중립 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경제·산업적 타격을 피할 수 없다. 가속화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은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런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법에, 두 개념은 똑같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 명시됐다. 기계적으로 탄소중립 옆에 녹색성장을 붙이다 보니, ‘탄소중립 사회 이행과 녹색성장 확산’이라는 어색한 문구들도 다수 포함됐다.

녹색성장의 연원은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제정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다. 제명에 ‘녹색’이 붙긴 했지만,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친환경기술’을 강조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논의되는 탄소중립과는 거리가 먼 ‘성장 전략’에 가깝다. 이 법을 만든 MB정부가 가장 주요하게 추진한 환경 정책 역시 4대강 건설을 위한 토목사업이었다. 녹색성장이 탄소중립과 병기되면서, 현재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탄소중립위원회의 명칭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바뀌게 됐다.

두 개념이 양립할 수 없다는 비판은 여당 내부에서도 나왔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논리적, 과학적으로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두 개 개념을 병립해 사용하는 국가, 기구, 학자들은 없다”고 했다. 같은당 장철민 의원도 “조화롭게 가자는 것은 좋은 이야기이지만 판단 기준을 제공해 주진 않는다. 법은 ‘탄소중립’이라는 분명한 우선순위를 세워줘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제명과 본문에서 ‘녹색성장’을 모두 삭제한 탄소중립기본법 수정안을 25일 본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지난달 열렸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송옥주 환노위원장. 연합뉴스

■‘2018년 대비 35% 이상’이 최선이었나

법안은 제8조1항에서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2018년 대비 35% 이상’을 최저 기준으로 정해놓고, 구체적 수치는 시행령에 넣기로 한 것이다. 2018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2760만t으로, 이 경우 2030 NDC는 4억7294만t 이상이 마지노선이 된다.

비록 ‘최저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기준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엔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철민 의원은 “사실 35% 이하의 목표는 환경부가 설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기준을 법에 넣는 것은 실익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하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30 NDC는 이 법안의 최대 쟁점이었지만, 사실 소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민주당이 NDC를 ‘법에 넣지 말고 시행령에만 넣자’고 주장하면서, 수치가 아닌 ‘법 반영 여부’만 논쟁이 됐기 때문이다. 외려 논의 과정에서 전향적인 의견은 국민의힘 김웅 의원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으로부터 나왔다. 두 의원은 모두 IPCC 기준을 준용해 2010년 대비 45~50%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앞서 열린 소위에선 한 차례도 수치 언급을 하지 않다가, 강행처리 직전 열린 소위에서 ‘2018년 대비 35% 이상’을 협상안으로 제시한 뒤 거절되자 바로 안건을 안건조정위에 넘겼다.

■ 탄소중립 달성 ‘의무’ 아닌 ‘목표’로 수정, CCS도 포함

법안에는 2050 탄소중립이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의무사항’이 아닌 추구해야 할 ‘목표’로 제시됐다. 민주당 이소영·이수진,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안에는 “달성하여야 한다”는 의무로 제시됐던 것이 검토 과정에서 수정된 것이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안에만 있던 탄소포집·저장·활용기술(CCS) 활용을 위한 법적 근거도 법안에 담겼다. CCS는 탄소중립위에서 최근 발표한 3가지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주요 방안으로 들어가 있지만, 기후운동단체들은 “불확실성이 큰 기술”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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