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 후쿠시마 사태 경험한 일본도 '탄소중립'에 원자력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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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03. 오전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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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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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6월에 탄소중립 전략 발표
4대 에너지원으로 원자력 포함
한국 탄소중립엔 원자력 제외돼
“과학적 근거 바탕해 열린 논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개회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P4G는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된 환경분야 다자간 정상회의로, ‘포용적 녹색회복을 통한 탄소중립 비전 실현’이 주의제다. [연합뉴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하면서 한편으론 원자력 활용을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은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여 안정적 공급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어느 나라 얘기일까. 일단 ‘원자력 활용’이란 표현이 들어갔으니, ‘탈(脫) 원전’을 표방하고 한국은 당연히 제외다. 정답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이다.

일본이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원자력 발전 이용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18일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2050년 탄소중립에 따른 녹색성장전략’을 발표하면서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로 명시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심각한 방사능 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정부가 낸 자료라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일본은 원전사고 이후 한때 영토 내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탄소중립 전략에 원전 이용을 명시하면서도 기존 원전에 대해서는 안전도 향상을 전제로 한 재가동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 차세대 원전 개발의 경우에도 ‘안전성이 뛰어난 원자로를 추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1년 3월 12일 후쿠시마 재1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이에 대해 주한 일본대사관측은 중앙일보에 “풍력ㆍ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할 계획이지만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원자력도 필요한 규모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 모두 원자력이나 방사능에 대한 이해가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원자력 정책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열린 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본의 ‘2050년 탄소중립에 따른 녹색성장 전략’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일본은 총 에너지 중 50~60%를 재생에너지로 채운다는 방침이다. 다음으로 원자력과 이산화탄소 회수를 전제한 화력발전이 30~40%, 수소ㆍ암모니아 발전이 10%를 차지한다. 암모니아 발전이란 암모니아(NH3)를 화석연료처럼 태워 가스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본 탄소중립 2050 전략 속 4개 에너지 분야
일본 정부는 또 이 보고서에서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에너지 4개 분야로 ▶해상풍력ㆍ태양광ㆍ지열산업(차세대 재생에너지) ▶수소ㆍ연료암모니아산업 ▶차세대 열에너지 산업과 함께 ▶원자력 산업을 포함시켰다. 여기서 원자력 산업은 구체적으로 ①고속로 ②SMR(소형모듈원전) ③고온가스로 ④핵융합, 네 가지라고 명시했다. SMR은 최근 한국은 물론 세계 주요국에서 탄소중립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차세대 원전방식이다. 고속로란 원전 핵폐기물을 다시 태워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원전을 말한다. 고온가스로는 탄소중립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원전이다. 고온공학 시험연구로(HTTR)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섭씨 950도로 50일 연속 운전을 달성했다는 게 일본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실현 당정협의’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전략에 원자력을 포함한 나라는 일본뿐이 아니다. 미국 또한 SMR은 물론, 고속로와 핵융합로 등 다양한 차세대 원전을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포함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고속로 실증로 건설에 들어갔고, 러시아는 고속로 실증로 운전을 이미 시작했다.

한국의 탄소중립 전략은 어떨까.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에는 원자력을 찾아볼 수 없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자는 면에서 보면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한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선 차이가 난다. 정부는 공해가 적은 액화천연가스(LNG)와 탄소 포집 기술을 바탕으로 한 화력발전 등으로 태양광ㆍ풍력의 간헐성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더불어 수소연료전지 등을 활용한 에너지 저장 및 발전 시설을 보태는 정도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하원에서 첫번째 정견발표를 하면서 일본의 탄소중립 목표 시한을 2050년으로 못박았다. 일본은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략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AFP=연합뉴스]

그렇다고 국가 차원에서 원자력 연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 16일 경북 경주에서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등을 위한 문무대왕과학연구소 기공식이 열렸다. 핵융합발전을 위한 연구 또한 지난해 말 독립 연구기관으로 승격된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일본이 하겠다는 고속로와 고온가스로는 그간 원자력연구원에서 연구를 진행해왔다. 청정수소 생산을 주목적으로 하는 초고온가스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시작돼 총 1300억원이 넘는 연구ㆍ개발(R&D)비가 투입됐다. 애초 목표는 2030년까지 초고온가스로 실증로를 완공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대신 연구인력 13명, 한 해 예산 31억원 수준의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수준이다. 일본의 고속로와 유사한 소듐냉각고속로의 경우 그간 37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됐지만, 지난해 연구가 중단됐다. 현재는 향후 연구개발사업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적정성 검토를 앞두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겸 탄소문화원장은 “현 정부의 원전 정책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한국의 경우 현실적으로 2050년 탄소중립은 원자력 없이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 때문에 관료들이 원자력을 공식적인 탄소중립 전략에는 집어넣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 정부가 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탄소중립 전략은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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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중앙일보 과학, 미래 담당 최준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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