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폭염 시작도 전에… 전력예비율 10% 붕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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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7.15. 오전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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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여파로 전력 생산량 줄어… 전기사용은 급증해 대정전 우려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14일 오후 4시부터 전력거래소의 전력 수요 그래프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날 순간 공급 예비 전력은 890만㎾대로 뚝 떨어졌다. 전력 예비율도 10.1%선까지 하락했다. 공급 예비 전력은 발전 사업자들이 공급하기로 한 총전력량에서 현재 사용 중인 전력을 제외한 것이다. 발전기 고장 등 돌발 사고로 인한 블랙 아웃(대정전)에 대비하기 위해선 통상적으로 전력 예비율은 1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전력 예비율은 지난 11일 36.1%에서 12일 11.8%, 13일 10.1%로 급격히 떨어지며 10%선을 위협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 전력관리처 계통운영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전력수급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역대급 폭염과 경기 회복 기대감에 산업용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여름 2011년 9월 대정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전력 사용량은 110년 만의 폭염이라던 2018년 여름을 웃돌고 있다. 지난 13일 최대 전력 수요는 8717만2000㎾로 2018년 7월 13일 최대 전력 수요(8207만6000㎾)보다 많다. 하지만 현재 발전 상황으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원전 총 24기 중 8기가 정비 중이고, 최근 운영 허가가 난 신한울 1호기는 내년 3월에나 본격 가동이 가능하다. 당초 2022년 11월까지 가동 예정이던 월성 1호기는 재작년에 조기 폐쇄됐다.

이 같은 전력 수급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어설픈 탈원전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수립된 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르면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호기, 월성 1호기 등 원전 총 4기가 추가 가동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전력 약 500만㎾가 공급 가능하다. 서울대 주한규 교수는 “무리하게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계속해서 전력 수급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한, 이런 상황은 매년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멀쩡한 원전 허가 늦추더니… 10년만에 大정전 위기감

올여름 공급 예비 전력이 통상적인 안정 수준(1000만kW) 이하로 떨어진 것은 이전보다 한 달 이상 빨랐다. 작년엔 8월 25일 1000만kW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때 이른 무더위에 공장 가동률 상승으로 산업용 전력 사용이 급증한 상황에서 탈원전 여파로 전력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시운전 중인 석탄화력발전기를 조기 투입하기로 했고, 영구 정지한 삼천포 화력 1·2호기와 보령 화력 1·2호기를 재가동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만큼 다급한 분위기다. 2013년 8월 이후 8년 만에 전력 수급 비상 경보 발령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공급 예비 전력이 550만kW 아래로 떨어지면 비상 경보가 발령된다. 지난 13일 예비 전력은 879만kW까지 떨어지면서 비상 경보 발령까지 불과 329만kW 남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기업을 대상으로 전력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9·15 정전 사태 재현되나

전력 예비율이 10% 선까지 떨어지면서 2011년 9월 중순의 정전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11년 당시에도 8월 하순쯤부터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 8월 31일 최대 전력 수요는 7219만kW, 공급 예비 전력과 예비율은 각각 544만kW, 7.5%까지 하락했다. 늦더위에 최대 전력 수요가 연일 기존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름철 전력 수급을 위한 비상대책본부 가동을 연장해 운영했고, 전력 수요 공급도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9월 중순 늦더위가 닥치자 최대 전력 수요가 갑자기 6728만kW까지 치솟으면서 공급 예비 전력은 334만kW(예비율 5%)로 급락했다. 다급해진 당국은 전국에서 일시에 전기가 끊기는 대정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순환 정전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전국 212만가구가 전기가 끊기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현재 전력 예비율이 간신히 1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시에 전기 수요가 몰리면 언제든지 2011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면서 “올해 유례없는 폭염이 예고된 만큼 정부가 면밀하게 전력 수요를 모니터링하고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급해진 정부, 기업 대상 수요 억제 나서

에너지 업계에선 올여름 전력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정비 중인 원전의 조기 가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실제로 현재 총 24기 원전 중 8기가 정비 중이다. 이 가운데 한빛 4호기는 현 정부 들어 4년째 정비 중이다. 한 원전 전문가는 “정비 중인 8기 중 작업을 서둘렀다면 지금쯤 몇 기는 가동이 됐을 것”이라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재가동 승인을 안 해주면서 가동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신한울 1호기는 지난해 4월 완공했지만 무려 15개월이 지난 9일에야 조건부 운영 허가를 받았다. 신한울 1호기 가동을 위한 절차를 시작해도 본격 가동에 들어가는 것은 내년 3월 말이나 가능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비행기 충돌 위험,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허가를 미뤄왔다. 신고리 5·6호기도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건설이 3개월여간 중단됐었고, 신한울 3·4호기는 원자로 등 주요 기기 제작에 7000억원을 투입하고도 전면 백지화됐다.

다급해진 정부는 최근 주요 기업들을 소집해 전력 사용이 피크일 때 기업들이 수요를 조절하거나 자체 발전 시설을 활용하는 수요 반응(DR·Demand Response) 제도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장에 공급을 확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수요 억제로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도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52시간 근무제나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낮에 공장 가동을 줄이고 전력 사용량이 적은 야간에 작업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주문이 몰리는 상황에서 공장을 멈추면 고스란히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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