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탄소제로, 30년 번 돈 쏟아 부어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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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14. 오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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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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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 30년 전쟁] [6] 한국기업, 고난의 행군 시작됐다

포스코 전남 광양제철소 제3 열연공장

지난 1일 전남 광양 포스코 광양제철소 열연 강판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로 섭씨 1200도로 달궈진 열연 강판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섭씨 1500도 이상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만든 쇳물로 슬래브(철판)를 만들고, 이를 열연·냉연 강판으로 가공하는 공정이 쉴 새 없이 반복됐다. 포스코가 광양·포항 제철소 2곳에서 고로 총 9개를 가동하며 지난해 1년간 사용한 전력량은 2만3727GWh(기가와트시), 배출한 탄소는 7565만t에 이른다.

포스코는 지난해 코로나 영향으로 철강 생산량이 줄어 탄소 배출도 전년보다 감소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탄소 배출 부채 202억원을 기록했다. 탄소 배출 부채는 정부에서 인정받은 탄소 배출권(자산)보다 실제 배출한 탄소가 더 많아 시장에서 사야 하는 탄소 배출권 비용을 말한다. 탄소 중립 추진 속도를 높인다며 정부가 기업 몫 배출권을 급격히 줄이자 탄소 배출 부채가 처음 쌓인 것이다.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한 포스코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석탄 대신 수소로 쇳물을 뽑는 수소 환원 방식 고로로 대체하는 것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이 고로 1기 건설 비용은 약 6조원(기존 고로 철거비 포함). 9기 교체에 총 54조원이 투입돼야 한다. 지난 약 30년 치 영업이익을 모두 쏟아부어야 가능한 금액이다. 더구나 수소 환원 공법은 2050년은 돼야 상용화할 전망이다.

포스코의 사례는 한국 산업이 처한 ‘탄소 중립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한국 제조업은 탄소 중립이라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하지만 천문학적 비용을 감내해야 하고 실용화하지도 않은 기술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한국은 GDP 내 제조업 비율이 25%로 일본(21%), 독일(18%)보다 높고, 10% 안팎인 미국·영국의 2~3배에 이른다. 주력 산업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철강 등은 모두 에너지 소비가 많은 업종이다. 전체 산업에서 이 업종들 비율이 50%를 웃돈다. 더구나 다른 나라들이 50년 넘게 추진해온 탄소 중립 로드맵을 30년 시한으로 압축 추진 중이다. 서울대 박남규 교수는 “목표만 향해 밀어붙이다간 국내 산업 기반이 허물어질 수 있다”며 “향후 20~30년간 지속될 탄소 중립이라는 거대한 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에 우리 기업들이 생존할 국가 차원의 현실적인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조차 로드맵 못 만들어… ‘脫탄소 과속’에 기업들 난감

지난 1일 찾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굴뚝에선 흰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등이 섞여 나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제철이 총 배출한 탄소배출량은 3069만2000t. 현대제철이 정부로부터 받은 탄소배출 한도를 훌쩍 넘겼다. 현대제철은 초과분에 대한 권리를 거래소에서 구매했다. 이런 식으로 현대제철이 2018~2020년 지출한 금액은 1571억원. 지난해 영업이익 730억원의 2배가 넘는다.


현대제철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기 2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비용만 35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제철소를 운영해 번 돈을 전부 탄소배출권 구매와 환경 시설 설치에 써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탄소 중립’의 큰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전환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지리·환경적 요인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 비용, 탈(脫)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등 탄소중립을 위한 여건은 경쟁국과 비교해 턱없이 불리하다.

◇삼성도 못 만든 ‘탄소중립’ 로드맵

지난해 7월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협력사에도 같은 기준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동참 의사를 밝힌 협력사는 17국 71개 기업. 대만 TSMC와 폭스콘, 3M을 비롯해 국내에선 SK하이닉스·서울반도체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애플에 반도체·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국내 1위 기업 삼성전자의 이름은 없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총 전력 사용량은 2만2916GWh. 이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율은 17.6%(4030GWh)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의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4고로에서 작업자가 쇳물이 잘 나오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고로는 내부 온도를 섭씨 1500도 이상으로 올려 철광석에서 쇳물을 뽑아낸다. 이 고로 1기를 탄소가 나오지 않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의 고로로 바꾸는 데 6조원이 든다. /조선일보 DB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현대차·SK·LG전자·포스코·네이버 등이 2030~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들의 준비 상황은 이런 선언과 차이가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다른 기업들도 구체적인 탄소중립 계획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일단 선언부터 하고, 실현 방법은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는 1520억원, 삼성전자는 318억원의 탄소 부채(작년말 누적 기준)가 쌓여 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인천석유화학 공장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2012년 정제 설비의 연료를 중유에서 천연가스(LNG)와 부생수소로 바꿨다가 최근엔 다시 전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전기로 바꾼다고 공정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설비 전환에만 수천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요금을 더 내면 발전 방식과 상관없이 재생에너지로 인정해 주는 ‘녹색 프리미엄’ 제도 같은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 태양광·풍력 발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재생에너지 100% 기업’으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탄소중립 비용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비용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국내에서 처음 거래된 2015년 1월 당시 1t당 8000원대였으나, 현재는 1만5000원 안팎으로 배로 뛰었다. 향후 탄소배출권 수요가 늘면, 이 가격도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상위 30개 상장사의 온실가스 배출 부채는 709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제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IT 기업에도 탄소배출권은 부담이다. 세종시에 두 번째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네이버는 탄소배출 증가로 2030년까지 1조3000억원에 달하는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 부담이 생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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