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검색어 입력폼

[시론]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치적 판단의 오류

후쿠시마 처리수 해양방류에 대하여 대중의 우려가 심각하다. 많은 언론은 마치 국민 모두가 반대하는 것 같이 보도한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다고 보는 다수의 침묵하는 원자력계 인사들이 있다. 그리고 매우 소수의 원자력계 인사들이 나서서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해양방류를 2년 후로 계획하고 있는데 벌써 수산물이 팔리지 않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패닉에 빠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과학에서의 진실은 과학적 사실을 말한다. 사회적 진실은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천동설과 지동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학적인 진실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진실은 지구가 중심이고 태양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이었다.

  천동설을 철석같이 믿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당시의 주류인 천동설을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그편에 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개중에는 지동설을 믿지만 그게 유포될 경우의 사회적 혼란을 고려하여 천동설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다수가 믿는 것이 진실이라는 주장이 작용하는 영역이 있다. 선거가 대표적이다. 다수가 대통령감이라고 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고 이미지만 보고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주식 시장도 그런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목이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믿는다면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종목은 가격이 올라간다. 장기적으로는 실체적 진실을 따르겠지만 사회적 진실이 힘을 발휘한다.

  오염수의 방류는 과학적인 문제인가 혹은 사회적인 문제인가? 사람에 따라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 정치인의 경우에는 이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범위를 세계인으로 넓혀본다면 또 판단의 기간을 보다 장기간으로 본다면 과학적 진실로 판단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다.

  방류하고자 하는 오염물의 총량이 얼마인가? 그 양이 정말 많은 것인가? 평상시 방류되고 있는 양과 비슷한가? 방류수의 농도는 얼마인가? 방류수의 오염물의 농도가 배출 제한치를 초과하는가? 일본의 배출제한치와 우리나라 배출제한치를 모두 만족하는 수치인가? 이것이 아마도 과학적 판단의 기준일 것이다.

  반면 ‘믿을 수 없다.’ ‘두렵다.’ ‘무조건 싫다.’ ‘일본이 관련 정보를 우리에게 직접 제공하지 않았다.’ ‘중국도 반대한다.’ ‘일본은 나쁜 나라다.’ ‘수산업 종사가 우려하고 있다.’ 이런 것이 그 많은 반대의 논거로 보인다.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하였지만 아마 검토를 제대로 하면 제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제소를 한다면 방사선 농도가 높거나 방사성 물질의 양이 때문이 아니라 수산물이 안 팔려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제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산물이 안 팔린 이유가 합리적인 것인지 또 국민정서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줄 것인지의 문제로 다투게 될 것이다.

  컵라면 용기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었다고 하면 양과 관계없이 무조건 불매하는 풍토도 비슷하다. 컵라면을 먹었을 때 인체에 축적되는 환경호르몬이 얼마나 되는지? 라면은 얼마나 먹는지? 어느 정도 축적되면 나쁜 영향이 발현되는지를 비교하고 그에 미치지 못한다면 환경호르몬은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불매운동을 당하고 나면 기업체 입장에서는 라면 용기를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사회적 진실이 과학적 진실을 이기는 순간이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기 때문에 머리와 가슴에 온도 차이가 있다. 머릿속으로는 비행기 사고보다 자동차 사고가 훨씬 많고 비행기가 사실상 더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비행기를 타면 자동차를 탈 때보다 왠지 모르는 불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러한 심리에 영향을 받아서 비행기를 없애기로 결정하려면 꽤 아둔해야 한다. 그 결정은 큰 손해가 될 것이다. 흔히 자기 눈을 찔렀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방송에 과학자로 초대된 원로 교수가 ‘후쿠시마 오염수가 깨끗하면 맥주 만들어 드시라.’ ‘일본은 믿을 수 없다.’ ‘방사선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데 아마도 자신이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해설가로 아는 모양이다. 후쿠시마 방류수에 대하여 과학적 진실을 사회과학적 잣대로 보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방송은 그런 아류과학자를 잘 이용하는 듯하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e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카카오 문자보내기
닫기

본문 글자크기

HOM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