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탈원전 타령에 굶어죽을 판" 신한울 3·4호기 백지화, 울진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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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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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500만원 벌다 1000만원 뚝…경기 이렇게 나빴던 적 없다"
21년간 인명사고 들은 적 없어…실체도 없는 안전우려 비판
일방통행식 에너지정책에 울진군 "끝까지 절차적 위법성 따질 것"
24일 오후 경북 울진 최대 번화가인 울진중앙로에 위치한 점포 곳곳은 공실 상태였고, 도로는 인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공동화가 심각해지자 지역경제가 무너지고 도심 상권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울진=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정부의 잇단 탈원전 조치에 지역민심이 들끓고 있다.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된데 이어 영덕 천지원전 추진이 29일 공식적으로 백지화되면서 금전적 손실은 물론 지방경기까지 극심한 침체에 빠뜨릴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달리 원전이 있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원전 지지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매출이 3~4년 전의 4분의1 토막으로 줄었습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외지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탓입니다. 울진의 원전 의존도를 이렇게 높여놓고 이제 와서 3·4호기를 안짓는다니 군민들이 다 굶어죽을 판입니다."

24일 오후 군청, 농협, 상가, 재래시장 등이 몰려 있는 울진 최대 번화가인 울진중앙로. 울진군청 앞에서 31년째 남성의류 매장을 운영중인 남상중(67)씨는 "울진 경기가 이렇게 나빴던 적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월 4500만원 수준이던 매출은 2년 전부터 급속히 줄어 지난해 코로나19까지 겹치며 현재 월 1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매달 2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던 중앙로 간판점포였지만 요즘에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날이 수두룩하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건설·토목 하청업체들이 철수하고, 외지인들이 울진을 떠나면서 상권이 무너진 탓이다. 식어가는 지역경제에 코로나19는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

이날 방문한 중앙로는 인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공동화가 심각했다. 가로, 세로 길이가 100m 남짓 되는 한 블록의 경우 ‘점포임대’라고 적힌 종이가 붙은 빈 상가가 9개나 됐다. 문을 연 점포에서는 손님을 찾기 어려웠고 행인조차 드물었다. 재래시장인 울진 바지게시장 역시 썰렁했다. 신한울 3·4호기 부지가 있는 북면과 인근 죽변면은 직격탄을 맞았고 원전 관련 일감이 줄면서 주민들은 농사일로 전환하거나 길거리 청소 등 새 일거리를 찾고 있다.

남씨는 "다음 정부에서 탈태양광, 탈풍력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며 "정권마다 지향점이 달라도 100년을 내다봐야 할 에너지 정책을 순식간에 뒤집는다면 어떤 국민도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근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A씨는 "울진에 터를 잡은 21년동안 원전 때문에 인명사고가 발생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며 "우리는 이제 원전과 함께 산다. 실체도 없는 안전 우려만으로 원전 사업을 중단하기에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울진 지역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한 것은 현 정부 출범 후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되면서다. 신한울 3·4호기는 2015년 건설 확정, 2017년 2월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지만 같은 해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후 좌초됐다. 정부는 2017년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은 2018년 6월 사업보류를 결정했다. 이는 울진 인구감소, 지역공동화, 고용감소, 지역산업 및 상권 붕괴 등 사회·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울진군 인구는 문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5만1738명에서 2019년 기준 4만9314명으로 감소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한 지역내총생산(GRDP) 손실 또한 연간 324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울진군은 추산한다.

원전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아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택시기사 전병철(56세)씨는 "한국이 원전을 수출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도 다녀왔지만 원전 일감이 없어지면서 택시를 몰게 됐다"며 "먹고사는 일도 걱정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기술, 인력 등 우리의 원전 경쟁력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24일 경북 울진 북면에 위치한 신한울 1, 2호기 부지 인근에 백지화된 신한울 3·4호기의 공사 재개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울진 지역사회는 현 정권의 일방통행식 탈원전 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과거 정부는 원전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해 한울 1호기를 건설, 1988년 가동을 시작했다. 울진에 현재 원전 6기가 가동되는 동안 지역경제의 중심축은 농·어업에서 원전으로 이동했다. 원전에 기반해 생활터전을 닦아 온 울진 주민들을 상대로 이제 정부는 탈원전 엑셀을 밟고 있다. 2018년 4월부터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신한울 1·2호기는 3년 동안 멈춰 있고 3·4호기의 운명은 차기 정권의 손에 넘어갔다. 그동안 발생할 모든 사회·경제적 손실은 오롯이 울진 주민의 몫으로 남았다. 울진군청 자체 조사 결과 울진군민의 80%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방문한 신한울 1·2호기 부지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하라", "청와대는 에너지전환정책을 즉각 철회하라" 등 공사 재개를 요구하는 플래카드 여러장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장유덕 울진군 의원은 "정부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면서 당사자인 지역민의 의견을 철저히 묵살했다"며 "탈원전의 절차적 위법성을 끝까지 따져 묻고 필요하면 헌법소원도 제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전 대신 자리를 꿰찬 것은 태양광과 풍력이었다. 후포, 영덕, 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너머에는 태양광 패널로 가득 찬 산, 논밭과 건물 지붕이 눈에 띄었다. 풍력발전기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탈원전으로 붕괴된 지역경제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울진을 비롯한 경북 곳곳을 파고들고 있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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