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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매경데스크] 정치·이념이 과학과 미래를 삼키다

박봉권 기자

입력 : 
2021-03-29 00:08:01
수정 : 
2021-03-29 0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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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으랬더니 국민 잡고
시장·기업과 싸워 고용참사
불편한 과학과 팩트는 거부
사진설명
화성탐사로버 퍼시비어런스는 오늘도 미지의 땅 화성 이곳저곳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외계생명체 흔적을 찾고, 유인 탐사와 인류의 화성이주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희박한 대기에서 산소를 뽑아내는 실험도 한다. 4억6800만㎞의 까마득한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전송한 화상은 스마트폰으로 바로 찍어 보낸 것처럼 생생하다. 경이로운 일이다. 사실 퍼시비어런스가 화성 표면에 안착한 것 자체가 기적과 같다. 칠흑 같은 밤에 워싱턴DC에서 수천 ㎞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로 던진 공을 배트로 정확히 맞히는 확률이라고 한다. 이 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게 바로 과학의 힘이다. 두 달여 뒤엔 중국 탐사선 '톈원 1호'도 화성 착륙을 시도한다. 구글 등이 기업정신 표상으로 삼는 문샷싱킹과 과학에 대한 믿음, 미래를 향한 거대한 도전이 맞물린 결과물들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안타깝게도 미래 담론은 실종된 채 4년째 정부가 과학과 싸우고 있다.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폐쇄를 선언한 날, 후쿠시마원전 사고 사망자가 1368명이라며 원전 포비아를 부추겼다. 거짓인데도 발언 오류를 수정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멀쩡한 월성 1호기를 억지로 세우려 경제성을 조작했다. 범법행위지만 반성과 사과 없이 통치행위로 퉁치려 한다. 정상 절차를 밟아 짓고 있던 신한울 3·4호 건설만이라도 재개해달라는 원전업계 생존 절규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세계 최고 효율의 한국형 원자로(APR 1400)를 장착한 신한울 1호기는 2018년 4월 완공됐지만 정부는 3년째 운영허가를 차일파일 미루고 있다. 신한울 1호와 똑같은 원자로가 들어갔고 건설 시점도 2년이나 늦은 UAE 바라카 원전은 이달 말 상업운전에 들어가는데 말이다. 과학으로 풀어야 할 일을 탈원전 정치 이념 잣대를 들이댄 채 억지를 부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나라가 10개국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외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등 대여섯 곳뿐이다. 이처럼 우리는 엄청난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줄 원전기술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국익보다 개인 신념을 우선시해 세계 최강의 원전기술을 사장시키는 것만큼 비과학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은 없다.

물론 이 정권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신재생에너지도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날씨에 좌우되는 에너지원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너무 커 원전을 대체할 수는 없다. 1년 365일 해가 나고 바람이 불게 해달라고 기우제를 지낼 것인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인 햇빛·바람에 의존하는 건 과학이 아니다. 풍광이 수려한 신안 앞바다에 남산타워 크기의 초대형 풍력발전기 1000여 개를 설치하겠다는 것도 비과학 억지다. 발전효율·경제성면에서 애초 원전과는 비교 대상도 안 되지만 거대한 풍력 블레이드 때문에 이곳을 경유하는 수많은 철새가 떼죽음을 당할 수 있는 등 심각한 생태계 교란과 환경파괴 경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과학과 상식을 파괴한 노골적 매표행위인 가덕도 신공항은 충격적이다. 가덕도는 세계 최고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파리공항항공단이 5년 전 낙제점을 준 곳이다. 공사 난이도 등을 볼 때 공항건설 자체가 실제 가능할지조차 불확실한 데다 매년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보궐선거가 없었다면 가덕도 신공항도 없었다. 그런데도 대통령까지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실었다. 당연히 포기해야 할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몰염치도 모자라 노골적인 선거운동까지 벌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문 정권은 우리 사회를 이끌 20대가 왜 등을 돌리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열린 실용적 사고를 하는 20대는 누구보다 촛불의 명령인 정의와 공정 가치를 중시하고 위선과 불의 반칙 특권을 거부한다. 분노하는 20대의 지지 철회는 이념과 진영 논리에 매몰돼 시장과 싸우고 과학과 싸우는 비정상적 국정운영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박봉권 벤처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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