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부사장, 2년전 원안위에 "정부지시로 월성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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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6. 오전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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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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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안전위 2019년 11월 회의서
"조기폐쇄 정부 지시 공문 받았다"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대전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전구치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2019년 1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월성 1호기 영구정지 심의 과정에서 당시 한수원 부사장이 "정부의 지시로 월성 1호기를 중단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2년 단위로 수립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을 근거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정부의 폐쇄 지시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법조계와 원전업계에서는 산업부의 공문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가 이뤄지기 전에 발송됐다는 점에서 조기 폐쇄 결론을 내려놓고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지시·압박에 따라 한수원이 일사천리로 행동에 옮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월성 1호기 중단 지시인가" 질의에 A 전 부사장 "그렇다"
15일 원안위 제111회 회의록(2019년 11월 22일)에 따르면 "(2018년 6월 15일 한수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결과 관련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한수원에 요청한 게 있냐"는 이경우 원안위원의 질의에 A 전 부사장은 "공문을 받은 바가 있다"고 답했다. A 전 부사장은 해당 공문에 대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심의 결과와 에너지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심의한 국무회의 의결사항, 그 두 가지 근거로 해서 (한수원은) 사업자로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 위원이 "그 얘기는 (월성 1호기를) 중단하라는 뜻으로, 지시로 되는 건가"라고 묻자 A 전 부사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당시 원안위는 월성 1호기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변경허가 안건을 심의했다.

2018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이듬해 1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영구 정지 운영변경허가 승인으로 가동이 멈춘 경주시 양남면 월성 1호기.[뉴시스]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안전성 등을 고려해 조기 폐쇄한다"는 내용의 '에너지전환 로드맵'은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두 달 뒤엔 산업부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 1호기를 제외했다. 계획에는 "내년(2018년) 상반기 중 경제성, 지역수용성 등 계속가동에 대한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폐쇄 시기 등을 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수원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착수한 건 2018년 4월 10일이다.

원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2017년 말 이미 월성 1호기에 대한 조기 폐쇄를 결정하고, 사업자인 한수원에게도 폐쇄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이라며 "이미 폐쇄 결정이 내려졌으니 그에 맞춰 월성 1호기의 경제성 변수를 낮추려고 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은 경제성 평가에 착수하기 전인 2018년 4월 초 백 전 장관이 산업부 공무원들을 통해 한수원에 '월성 원전은 가동할수록 적자가 난다'는 거짓 의향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 전 비서관도 같은 해 4월 2~3일 직접 또는 비서관실 행정관 두 명을 통해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당장 월성 원전을 중단시킬 수 있도록 계수를 조작하라" "한수원을 압박하라"는 등의 지시를 한 것도 파악됐다고 한다.

백 전 장관은 4월 3일 산업부 정모 과장이 채 전 비서관 지시 내용을 전하면서 "즉시 중단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원안위의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 기간인 2020년까지 한시 가동한다"는 방안을 보고하자 "너 죽을래? 즉시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결국 한수원은 경제성 평가 핵심 계수인 이용률과 판매단가를 낮춰 '흑자' 원전이던 월성 1호기를 '적자' 원전으로 평가했다. 한수원 이사회는 같은 해 6월 15일 허위 경제성 평가 보고서를 근거로 월성 1호기 가동을 곧바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한수원은 이듬해 2월 원안위에 월성 1호기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했고 원안위는 그해 12월 이를 최종 승인했다.

산업부는 경제성 결과가 나오기 전인 2018년 6월 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보전 비용은 0원'이라는 내용의 공문도 한수원에 보냈다. 조기 폐쇄하더라도 피해가 0원이라고 명시해 한수원의 모회사이자 상장사인 한국전력의 배임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백 전 장관과 청와대가 이에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원안위는 이날 월성 원전 1호기 영구 정지를 위한 운영변경허가를 승인했다. 연합뉴스

한수원, 월성 조기폐쇄 후 원안위에 "안전성엔 큰 문제가 없다"
당시 원안위 심의 과정에서는 한수원 이사회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의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랐다. 이 위원은 A 전 부사장에게 "월성 1호기에 특별히 제기된 안전성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A 전 부사장은 "당시 이사회에서 다룬 안전성 항목은 '현재 설비가 계속운전을 하기 위해서 안전하지 않으니 정지해야 된다'는 취지보다 '영구정지를 해도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측면의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원안위 위원은 "안전에 대한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도 조기폐쇄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해 황당했다"며 "한수원 이사회에서 안전 문제는 전혀 논의가 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이병령 원안위원도 정재훈 한수원 사장 취임 후 두 달만에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없다고 분석 결과가 뒤바뀐 점, 한수원의 영구 정지 신청을 받은 원안위가 7개월 동안 안건을 상정하지 않다가 감사원의 감사청구(2019년 9월 30일) 이후인 2019년 10월 11일 첫 안건 상정을 한 점 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영구 정지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임라인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감사원·김영식 의원실, 검찰 공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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