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靑 "원전 수치 뜯어 맞춰라" 산업부에 직접 지시

조백건 기자 입력 2021. 2. 10. 05:00 수정 2021. 2. 10. 13: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채희봉 前비서관, 에너지실장에 "월성 1호기 경제성 낮춰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이 2018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原電) 담당 고위 공무원에게 “월성 1호기를 당장 가동 중단 시킬 수 있도록 원전 관련 계수(係數·수치)를 뜯어 맞춰라. 한국수력원자력을 압박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들도 다른 산업부 원전 담당 공무원들에게 이 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평가 조작’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정황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2020년 10월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국정감사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감사원과 산업부 등에 대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채희봉 전 비서관은 2018년 4월쯤 당시 산업부 박모 에너지정책실장에게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을 위한 ‘수치 조작’을 지시했다고 한다. 월성 1호기 가동의 경제성이 낮게 나오도록 외부 기관의 경제성 평가 과정에서 월성 1호기의 전력 판매 단가와 이용률 수치를 낮게 잡아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채 전 비서관은 그러면서 이런 경제성 평가 결과가 나오도록 원전 관리를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에 압력을 넣으라는 식의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 전 비서관 밑에 있던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 2명도 같은 시기 당시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국의 문모 국장(구속 기소)과 정모 과장(불구속 기소), 김모 서기관(구속 기소)에게 비슷한 지시를 했다고 한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이 같은 청와대의 지시를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로부터 이 같은 지시가 내려오고 난 뒤부터 산업부 원전 담당 공무원들은 한수원 직원들이나 경제성 평가 기관 관계자들에게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을 할 수 있도록 경제성 결과가 낮게 나와야 한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S회계법인은 월성 1호기 판매 단가와 이용률을 낮게 책정해 원전 가동의 경제성이 현저히 낮게 나오도록 했다는 게 앞선 감사원 감사 결과이기도 했다. 이런 경제성 평가 결과는 그해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에 상정됐다. 한수원 이사회는 그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본지는 채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그동안 월성 1호기 폐쇄 과정에서 청와대의 직접적 개입은 알려진 것이 없었다. 2018년 4월 초 월성 1호기의 ‘한시적 가동’ 필요성을 보고한 산업부 정모 과장에게 백 전 장관이 “너 죽을래”라고 질책하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지시한 것만 알려져 있었다. 관가에선 백 전 장관이 이런 말을 한 것도 청와대의 ‘즉시 가동 중단’ 지시가 내려온 것을 보고받았기 때문이라고 관측한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법원이 백 전 장관 영장을 기각한 지 1시간 30분쯤 뒤인 9일 새벽 2시쯤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긴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사팀 내에선 영장 기각을 높은 강도로 반박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납득하긴 어렵다’란 말로 정리가 됐다고 한다.

대전지검 관계자는 “일단 영장 기각 사유의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수사팀이 영장 발부에 무게를 뒀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백 전 장관 신병 처리와 별개로 ‘경제성 평가 조작’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원은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면서도 “이미 주요 참고인이 구속된 상태이고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된 상태여서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