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이라니…" 인재 몰리던 울진 원전마이스터고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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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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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에 사상 첫 미달...한수원 취업문도 좁아져
학과명에 '원전' 지우며 안간힘... 지역경제도 휘청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위치한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등학교. 울진=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취업률 95%를 자랑하던 경북 울진의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가 학과명 바꾸기 작업에 나섰다. 원전기계과는 기계과로, 원전전기제어과는 전기제어과로 간판을 바꿔 다는 등 ‘탈원전’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충격으로 2013년 개교 이래 처음 신입생 미달 사태를 맞은데 따른 생존 전략이지만,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원자력마이스터고 관계자는 6일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지만, 교명 앞에 붙은 ‘원자력’ 단어 때문에 취업이 힘들어질 것 같아 학과 이름을 고쳤다”며 “입학 지원자들에게 ‘원전 관련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다’라는 점을 입이 아프도록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마이스터고가 학교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 '원전' 지우기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원자력마이스터고는 국내 유일의 원자력 기술인력 양성학교로 출범했다. 농촌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처한 평해공고를 경북도와 도교육청,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이 2013년 원전마이스터고로 재개교한 학교다. 2016학년도 입학 경쟁률이 2.65대 1, 2017학년도 2.16대 1 등 개교 이후 줄곧 2대 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화된 교육에, 수업료 면제, 전원 기숙사 생활 등의 파격 조건에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졸업 후 많은 학생들이 ’신의 직장’으로 들어가면서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린 결과였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등학교 로비에 설치돼 있는 원자로 모형. 울진=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이처럼 학생들이 몰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학교였지만, 최근엔 신입생 추가 모집 공고를 낼 정도로 학생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학교 관계자는 “미달한 기계과에 2명을 충원하기 위해 전형 절차를 밟고 있다”며 “추가 모집은 개교 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달 사태는 2017년 '탈원전'을 내세운 현 정부 출범으로 어느 정도 예상됐다. 2대 1 이상 경쟁률을 기록하던 입학 경쟁률은 2018학년도 입학 전형에서 1.04대 1을 기록, 가까스로 미달을 면했다. 2019학년도에 1.6대 1로 반짝 오르기도 했지만, 2020학년도에 다시 1.05대 1로 떨어지더니, 이번엔 처음으로 미달사태를 맞았다. 학교 관계자는 “전국 52개 마이스터고 중 취업률 상위 5위에서 빠지지 않았고, 졸업과 동시에 ‘신의 직장’으로 졸업생을 보내던 학교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원자력마이스터고는 매년 졸업생 80명 중 4분의 1가량이 한수원에 입사했고, 나머지도 대부분 한국전력과 유명 대기업에 취업해왔다.

학교가 대대적인 학과 리모델링에 나서는 등 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매년 학교로 50장씩 오던 한수원의 채용원서가 올해는 15장에 그쳤다. 미달사태가 반복되면 분위기는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학교 관계자는 "50장이 올 때 18명씩 채용됐다. 올해 한수원 취업자는 5명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졸업 예정인 고명석군은 “원전 해체에도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탈원전’ 한마디에 모든 게 묻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 작년 1월에 재학생 112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 정책을 다시 생각해달라’며 손편지도 보냈지만 현재까지 답장 받은 학생은 없다.

지역주민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원전 백지화로 6개월 만에 식당 100곳이 문 닫고, 인구 유출도 커져서 도시가 소멸 위기에 이르렀다”며 “ ‘탈원전’에 꿈나무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학생 112명이 지난 2018년 11월과 12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脫)원전 정책을 재고해 달라는 내용으로 쓴 손편지들. 지난2019년 1월 14일 청와대로 발송됐지만 아직 한 통의 답장도 오지 않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울진=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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