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요금, 이제는 탄소가격 반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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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짜로 사용했지만 최근에 가격표가 붙은 상품이 하나 있다. 바로 ‘탄소’라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우리가 에너지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부산물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가격표가 붙은 적이 없다. 하지만 2015년부터 한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시작되어, 현재 탄소 1t을 배출하려면 약 2만5000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2018년 기준 국민 1인당 매년 14t 정도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은 1인당 매년 35만원 정도의 탄소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용은 여러 제품 가격에 반영되어 우리가 은연중에 지불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불하고 있지 않은 분야가 있으니 바로 전기이다. 소비자가 매달 납부하고 있는 전기요금에서 탄소 비용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누가 전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단기적으로 보면 한전이 매년 탄소 배출과 관련된 추가비용을 스스로 감내하고 있다. 석탄 등 화석에너지를 통한 전력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비용은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의 전기요금 결정체계에서는 이 비용을 온전히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한전의 영업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이 자명하다. 공기업인 한전의 재무건전성 악화가 무슨 문제냐고 물을 수 있지만, 다음 몇 가지 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조속한 개선이 필요하다.
강희찬 인천대 교수·경제학
첫째, 적자가 발생하면 한전은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금을 통해 부족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최근 한전은 부족 자금의 대부분을 회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있는데, 채권이라는 것이 현세대의 부담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라는 것이 문제다. 작년 한전의 회사채 규모는 2018년 대비 약 6조6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으로 남게 된다.

둘째, 전력이라는 공공 인프라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기에 위험하다. 적자가 지속하면 전력망, 변압기 등 인프라 투자를 미루게 되고, 이는 결국 국가 전력망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미래에 대비한 혁신적 투자를 감소시켜 차세대 전력기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해외사업 투자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석탄화력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는 상대국 정부 및 사업 파트너들과의 관계, 국내 기업 동반진출, 온실가스 배출 최소화를 위한 ‘초초임계압’ 기술 적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적자 상황을 만회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그린뉴딜’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단기간 내에 일회성 예산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 내에서 재원이 마련되고 이를 다시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비용을 적정하게 반영하는 요금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하루빨리 탄소 비용을 적정하게 반영하는 투명한 전기요금체계를 마련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강희찬 인천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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