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경제성 낮게 하겠다’ 산업부가 靑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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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14. 오전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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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가동중단 결론내고 보고
2018년 산업통산자원부가 월성 원전 1호기(이하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 과정에 적극 개입해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산업부는 경제성 평가를 시작하기도 전인 2018년 4월 4일 ‘즉시 가동 중단’ 방침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졌다. 현 정부가 월성 1호기에 대해 ‘즉시 가동 중단’이라는 방침을 사전에 정해 놓았을 뿐 아니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까지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던 것이다. 검찰은 최근 당시 산업부 원전(原電) 담당 국장과 과장 등을 소환해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에 대한 경제성 조작 혐의'등 과 관련해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현종 기자

본지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장은 2018년 5월 2일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현황’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엔 ①월성 1호기 가동으로 인한 안전 비용 등 경제성 저하 요인 (평가 기관에) 적극 설명 ②산업부 원전산업국장이 한수원 사장과 월성 1호기 이용률 (하향 책정) 적극 협의 ③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관련 추가 비용은 경제성 평가에서 제외 등의 내용이 담겼다. 월성 1호기의 ‘계속 가동’ 경제성은 낮추고, ‘즉시 가동 중단’ 필요성은 높이겠다는 실행 계획을 담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해 5월 30일 산업부는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이란 문건을 또 작성했다. 이 문건엔 ‘월성 1호기 가동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올 필요’란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 관계자들은 검찰에서 “산업부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나지 않으면 한수원에도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현황’, ‘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등 두 문건이 모두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 두 문건은 작년 12월 1일 산업부가 삭제한 444개 파일에 포함된 것이다. 검찰은 444개 문건을 삭제한 산업부 원전 담당 서기관(4급)을 상대로 감사 정보가 사전에 누설됐는지를 수사 중이다.

文 한마디에 산업부 “월성 즉시중단”, 한수원 압박해 경제성 조작

정부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가 발단이 됐다. 문 대통령이 ‘언제 가동 중단하느냐’고 묻자 곧바로 산업부와 한수원이 법적·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조기 폐쇄를 밀어붙였다.

20일 오후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인다. 감사원은 이날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타당성'감사 결론을 공개했다./연합뉴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원전(原電)을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을 축소하겠다’는 내용을 2018년 5월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청와대가 월성 1호기 폐쇄 과정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물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의뢰로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맡았던 삼덕회계법인도 ‘경제성이 있다’고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성 1호기를 폐쇄하기 위해 공무원 조직이 총동원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과 감사원 조사를 받은 복수의 청와대·산업부·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추진의 발화점이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질문’이었다. 2018년 4월 2일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온 문미옥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그날 청와대 내부 보고망을 통해 ‘(월성 1호기) 외벽에 철근이 노출돼 있었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날 문 대통령이 이를 보고, 참모들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물었고, 대통령의 질문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을 통해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 등에게도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이보다 10개월 전인 2017년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 “탈핵(脫核) 국가로 가는 출발”이라며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대통령의 폐쇄 선언이 나온 지 1년이 다 된 2018년 4월까지 산업부와 한수원은 월성 1호기를 폐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언제 문 닫느냐’고 묻자 바로 다음 날인 4월 3일,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장은 ‘월성 1호기는 조기 폐쇄하되, 원자력안전위의 원전 영구 정지 허가가 나올 때까지 2년 6개월 더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백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백 전 장관은 “너 죽을래”라며 크게 화를 내고,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뒤 산업부 원전과장은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고쳐 올렸고, 백 전 장관은 “됐다. 이대로 청와대에 보내라”고 해서 청와대 보고까지 이뤄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관련 질문을 한 지 이틀 만에 산업부의 방침이 ‘즉시 가동 중단’으로 확정된 것이다.

그런데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안전성 혹은 경제성에 문제가 있어야 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5년 2월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계속 운전 승인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제성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고, 4월 10일 한수원은 삼덕회계법인에 경제성 평가를 의뢰했다. 한수원이 경제성 평가를 의뢰한 이날은 청와대에 ‘즉시 가동 중단’ 보고를 한 7일 후였다.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을 하고, 짜맞추기 경제성 평가에 들어갔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경제성 평가를 맡은 삼덕회계법인은 처음 원전 이용률 85%를 적용한 경제성 평가모델을 제시했다가 2018년 5월 4일 산업부, 한수원과 회의 후 이용률을 70%로 낮췄다. 그러나 70% 이용률을 적용한 경제성 평가도 계속 가동이 즉시 폐쇄보다 1778억원이나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5월 11일 산업부·한수원과의 회의 후 60%로 다시 낮췄다. 그 결과 사흘 후인 5월 14일 최종 보고서에서 계속 가동 이득은 224억원으로 급락했다. 이렇게 이용률과 판매 단가를 불합리하게 낮추고도 계속 가동이 폐쇄보다는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그런데도 한수원은 6월 15일 이사회를 열어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삼덕회계법인이 이처럼 두 차례에 걸쳐 경제성을 낮춰 잡은 배경에는 산업부가 2018년 5월 2일 청와대에 보고한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추진계획’이 있었다. 산업부의 추진계획에는 ‘월성 1호기 가동이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게 하기 위해 한수원과 삼덕회계법인을 압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산업부는 군사작전 하듯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은 “장관의 지시다. 월성 1호기 가동의 경제성이 높게 나오면 안 된다” “즉시 가동 중단 결론을 청와대에도 이미 보고했다”며 한수원을 압박했다. 관가(官街)에서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의 시작과 끝은 문 대통령”이란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김아사 기자 asakim@chosun.com] [최현묵 기자 sean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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