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용후핵연료 처리, 정부가 결단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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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등 사용후핵연료 꽉 찼는데
저장시설 증설 두고 공론화 '난항'
정부가 나서 책임지고 결정해야

김명자 < 서울국제포럼 회장, 前 환경부 장관 >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원회)가 진행한 월성 원전 내 맥스터(MACSTOR) 증설 공론화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달 24일 재검토위원회는 지역실행기구와 함께 시민참여단 145명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찬성이 81.4%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울산지역 탈핵단체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울산이 공론화 과정에서 빠졌다고 반발하고, 증설 반대 측은 공론조사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대통령 산하기구를 설치해 재공론화하라고 주장한다. 찬성 측은 2022년에 맥스터가 포화상태에 이르므로 설계수명이 남은 월성 2, 3, 4호기의 운영을 위해 7기의 추가 건설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맥스터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로, 원자력안전법에 규정된 관계시설이다. 월성 원전에는 건식저장시설로 캐니스터 300기와 맥스터 7기가 있다. 캐니스터는 콘크리트 사일로 방식이고, 맥스터는 습식저장시설에서 냉각시킨 사용후핵연료를 원통형 저장용기에 넣어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일정 간격으로 배열한 공기 냉각 저장시설로, 캐니스터보다 용량이 훨씬 크다.

한국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 정책의 역정(歷程)은 험난했다. 1980년대 계획은 90년대까지 중저준위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을 동일 부지에 건설하면서 사용후핵연료는 최종처분한다는 기조였다. 그러나 1989년 경북 지역 3개 후보지를 조사하다가 중단되고, 91년 안면도, 95년 굴업도 처분장 계획도 진통 끝에 줄줄이 백지화됐다. 이후 방폐장 선정 문제는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 첫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김대중 정부의 행정실패 사례로 발표됐다. 그로부터 넉 달 후 방폐장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부안 사태에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감사원은 2006년 부안 사태의 원인을 신뢰 부족, 절차상 결함, 시민단체 영향, 법제도의 미흡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 말에는 중저준위 처분장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중간저장시설을 별도로 건설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로써 19년 만에 중저준위 처분장 부지로 경주지역이 선정됐다. 필자는 2014년 저서 《사용후핵연료 딜레마》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자원으로 보아 재처리할 것이냐, 폐기물로 보아 영구처분할 것이냐’의 딜레마를 다룬 적이 있다. 현재까지 한국의 최종관리 정책은 ‘두고 보자(wait and see)’는 단계이고, 여태 중간저장을 놓고 난관을 겪는 상태다. 원전 발전량 세계 1위인 미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 내에서 건식저장하다 물량이 차서 원전 부지 밖의 중간저장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간저장시설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심했던 해외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공론화 때마다 지역사회, 언론, 정치권이 모두 찬반으로 대립했고, 국민적 관심은 끌지 못했다.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언론은 ‘출발부터 삐걱’이라고 썼고, 우여곡절 끝에 2015년 6월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그러나 2019년 5월 재검토위원회 출범으로 공론화는 다시 유턴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사회과학적 난제다. 복잡하고 민감하고 불확실하고 사회적으로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공감대 형성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정부의 역할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브레이크 없이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듯이, 반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되 정책의 최종 책임은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정부의 몫이다.

공론화의 데자뷔를 보며 생뚱맞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끼리 수십 년간 풀지 못한다면 차라리 양측의 데이터를 주고 인공지능(AI)에게 묻는 건 어떤가. 일론 머스크의 ‘오픈 AI’가 GPT-3를 내놓고 ‘신은 누구인가’의 문답을 하는 상황이니, 아직은 왕초보이지만 “사람끼리 못 풀 거면 AI에게 물어라”라고 할 때가 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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