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전력망 과부화 위기 올 뻔한 순간 있었다

김정수 2020. 7. 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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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 한때 수요량 2000MW '뚝'
긴급 대응해 공급량 겨우 맞췄더니
추가 감소 대응할 여력 100MW 남아
"좀더 줄었더라면..상상만해도 끔찍"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월 한때 전국의 전력 수요가 예상치 않게 급감한 상황에서 한국전력거래소가 추가 수요 감소에 대응해 줄일 수 있는 발전량(감발량)이 100MW까지 떨어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00MW는 보통 석탄발전소 발전량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해 평균 6만MW 안팎의 국내 전력망에서는 수시로 오르내리는 작은 부하량이다.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수요 증가에 대비해 확보하는 예비력이 100MW 미만으로 내려가면 전력수급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고 순환단전에 들어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가 급감할 때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일치시키기 위해 줄일 수 있는 감발량 예비력에 대해서는 기준조차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력 관제 현장의 목소리다. 전기는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할 때뿐 아니라 공급이 과다할 때도 대정전(블랙아웃)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소속 연구자들이 최근 부산에서 열린 대한전기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실시간 하향예비력 기준 설정에 관한 검토’ 논문을 보면, 지난 2월23일 일요일 오전 9시를 기점으로 전국 전력망의 수요 부하가 전날 예측했던 것보다 2000MW가량 급감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전력거래소가 관리하지 않는 태양광 발전 공급량이 예측 못한 일사량 상승으로 급증하며 수요를 충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중앙전력관제센터는 일부 발전기를 정지시키거나 출력을 낮춰 발전량을 줄이는 한편 양수발전소에 상부댐으로 물을 퍼 올리는 작업을 지시해 전력 소비를 늘려 대응했다. 문제는 이렇게 수급을 조정하자 추가로 줄일 수 있는 발전량이 100MW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중앙전력관제센터 관제 실무책임자였던 신기준 관제5부장은 16일 전기학회 학술대회 패널 토론에서 “전력 수요가 갑자기 빠져 발전기를 정지시켜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양수발전소 펌프질을 통해 겨우 넘어갔다. 당시 하향 예비력이 100MW에 불과해 수요가 좀더 감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원자력이나 석탄화력발전기 같은 대형 기저 발전기는 신속한 정지가 불가능하고, 천연가스발전기도 설비에 따라 정상적 정지에 2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전력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100MW 정도는 전력망에서 수시로 오르내리는 작은 부하”라며 “수요 감소가 문제가 된 최악의 경우에는 발전 설비에 무리가 가더라도 발전기를 강제로 세워 정전까지 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해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발생시키는 것을 정상적 대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2월23일 오전 8시께까지 예측했던 것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게 유지되던 전국의 전력 수요실적이 이후 급감하기 시작해, 한 시간 쯤 뒤엔 예측 수요에서 2000MW가량 빠진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 발표 이성균·신기준 ‘실시간 하향예비력 기준 설정에 관한 검토’ 논문

문제는 2월23일과 같은 상황은 출력 변동이 심한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급속히 늘면서 더 잦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라는 것이다. 전력거래소는 설비 용량 20MW 이상의 모든 중앙급전발전기를 제어하면서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발전 비용 중 변동비(사실상 연료비)가 싼 발전기부터 발전에 투입하고 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어 전력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가동되는 발전기들은 대부분 신속한 정지나 출력 조절이 사실상 불가능한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기 같은 대형 기저 발전기일 수밖에 없다.

새로 도입되는 발전기들의 발전 용량이 점차 대형화되는 것도 전력 계통의 안정적 운영에 불안 요소다. 발전기는 용량이 크면 클수록 정지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동과 출력 조절이 상대적으로 용이해 유연성 자원으로 불리는 복합발전기도 용량조차 600MW를 넘으면 세우는데 평균 2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중앙전력관제센터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처럼 발전량을 신속하게 줄이는 것이 발전량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지만, 현재 발전사들이 전력거래소에 제출하는 발전기의 기술적 특성 자료에는 정지 지시에서 실제 정지까지 걸리는 시간인 ‘정지 소요 시간’은 개념 정의조차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신 부장은 “2003년에 준공된 한 복합발전기는 정지 지시를 내리면 15분 만에 정지되지만, 2014년에 준공한 수도권의 한 복합발전기는 정지 지시가 나가도 3시간 후에 정지돼 위급할 때 써먹을 수 없다. 계통 운영 측면에서는 발전기의 특성이 후퇴하고 있다”며 전력 수요가 예측보다 감소하는 상황에 대비한 ‘하향 예비력’ 기준 신설을 제안했다.

전 교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면서 전력 수급이 급변하는 상황이 잦아지고, 그것에 대응해 출력을 제어할 수 있는 발전기 숫자는 줄어들면서 전력망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계통운영, 규정, 제도, 전력시장 등을 체계적으로 바꾸고 통할해 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력거래소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신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예비력 기준을 개정하고 신재생에 특화된 관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유연성 자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 위한 보조서비스 시장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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