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가동에 따라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맡은 산업통상자원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파행을 겪고 있다. 정정화 위원장이 “탈핵 진영이 빠진 공론화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사용후핵연료 관리가 또다시 표류하게 생겼다.

이런 식으로 가면 경주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언제 해소될지 기약이 없다. 맥스터가 2022년 3월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이를 막으려면 늦어도 올여름에는 증설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월성 2~4호기를 멈춰 세워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지경까지 이른 경과를 보면 국가 의사결정 과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권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여겨 다음 정권에 떠넘겨온 것부터 그렇다. 노무현 정부는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시설만 결정하고 고준위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다음 정권으로 미뤘다. 이명박 정부는 다시 박근혜 정부로 넘겼다. 박근혜 정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이란 모호한 로드맵을 내놨지만. 탈핵 인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가 겨우 마련한 기본 계획마저 전면 백지화했다.

정 위원장이 중립적인 전문가로 구성돼야 할 위원회에 탈핵 시민사회계가 빠져 대표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탈핵 시민계가 위원회에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정부는 더 이상 탈핵 단체들에 질질 끌려다니면 안 된다. 위원회를 구성해 공론화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산업부는 월성원전 맥스터뿐 아니라 영구처분시설 건립 등 중장기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책임지고 매듭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