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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이 말은 프랑스 국왕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망언이다. 국민이 빵이 없다고 하는 말은 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먹을 양식이 없음을 말하는 것인데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했으니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그것이 고기가 아니라 케이크였다는 말도 있고 브리오슈라는 말도 있다. 또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런 발언이 있었다면 망언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두산중공업이 휴업과 감원을 단행하고 알짜기업의 매각을 결심하는 급박한 현실에 대해서도 가히 망언이라고 할 만한 발언이 많다. 두중이 두산건설을 지원한 사실이 휴업사태의 주요 원인인 양 포장하거나 원전사업의 비중을 줄여서 말하는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모두 일종의 물타기일 뿐이다. 10조원 매출 손실의 여파를 설명하지 못하고 기업주의 도덕성이나 경영현실을 싸잡아서 조리를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력과 석탄발전의 일감이 없으면 풍력을 하라는 것은 기가 막힌 얘기이다. 원자력은 중공업이다. 무겁고 큰 쇳덩어리를 주물, 단조, 용접하는 산업이다. 풍력발전은 가볍고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로 다른 기술인 것이다. 기술력은 어떤 산업 규격을 이해하고 자격요건을 획득하고 있는지에 있다. 두중이 원자로를 제작한다는 것은 이와 관련한 미국기계학회(ASME)의 규격과 한국전기학회(KEPIC) 등의 모든 산업규격과 기술적 자격요건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자력과 석탄발전의 주요 기기를 제작ㆍ납품하던 회사에 풍력을 하라는 것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맨땅에서 기업을 일군 기업의 노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발언이다. 우리나라가 최초의 연구용원자로를 도입했던 1960년대에는 원자로를 용접할 기술이 없었다. 당시에 3만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용접사를 모셔왔던 일이 있다. 그게 기술이다. 별것 아닌 기술을 배우려고 이웃 나라에 가서 굽신거리고 기술자를 모셔와야 했고, 이론적으로는 간단한 문제인 것 같은데 해결되지 않아서 날밤을 새워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다. 굶주린 승냥이가 먹잇감을 찾아 허허벌판을 헤매는 심정으로 미국에 원전 주기기를 수출하러 다녔던 사람의 심정을 알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다.

 두중만의 문제가 아니라 2600여 협력사의 운명이 달린 일이라고 하면 그렇게 쉽게 풍력을 하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주기기 공급과 관련된 800여개 협력사와 직원들에게 풍력발전을 하라고 할 수 있는가? 3조6000억원의 돈을 꿔준다고 원자력선수가 풍력선수로 바뀌겠는가.

 이런 발언은 단순한 폄하를 넘어선 모독이다. 노동자가 평생을 걸려 기술을 습득하고 장인이 되었는데 세상 변화하는 추세를 보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리고 거짓말이기도 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부문 제1공약은 미국 원자력 경쟁력의 회복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국 원전을 수출하느라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탈원전이 추세라는 말은 거짓이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철기 시대에도 석기와 청동기는 사용된다.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재생에너지원이 가지는 환경의존성으로 인해 기존의 화력발전소 없이는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풍력발전기 사업도 LNG발전기 사업도 이미 두중이 하고 있는 분야일 뿐이다. 원자력을 풍력으로 바꾸라는 뜻이 아니라 원자력을 접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두중은 캐나다가 중국에, 미국이 중국에 원전을 수출했을 때 각각 주기기를 공급한 회사이다. 미국이 자국 내에 4기의 원전을 건설하는데 여기도 두중의 주기기가 납품됐다. 미국이 원자력산업을 부활하면 두중의 주기기가 필수적일 것이다. 세계적 대세도 아닌 것을 탈원전이라는 사기극을 만들어 낸 당사자가 할 말은 더욱 아니다.

 신문기자가 아무리 의학 지식을 공부해서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도 환자를 보고 수술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 지식은 1차적 지식이 아니라 2차적 지식이기 때문이다.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는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런데 해당 분야을 전공하지 않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기술을 습득하는 노력도 한 적이 없이 풍월만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조심하고 겸손해야 한다.

 평생 훈수만 두어 본 사람은 직접 대국을 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한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겸손을 잃었다. 국민도 잃을 것이다. 어디라고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가.

 

정범진(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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