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그린 뉴딜, '이념적 사치'에 매몰돼선 안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강원 춘천의 한 데이터·인공지능(AI) 전문기업을 찾아 ‘한국판 뉴딜’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뉴딜과 달리 그린 뉴딜은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에 관련된 ‘장기’ 이슈다. 따라서 ‘코로나 불황’을 타개하고 시장실패를 단기보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정책목표를 단기 경제회생에 둬야 한다.

코로나 사태에 발목 잡힌 경제는 고사하기 직전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2%로 추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다. 한국은행도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0.2%로 크게 낮췄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의 역성장이다.

대부분 국가의 코로나 대책은 기업 유동성 지원과 소비시장 회복을 위한 재정 투입에 집중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이전 상태로의 조기복귀를 겨냥한 것이다. 재정 투입을 통한 수요 진작이 공급효율화를 유도할 가능성이 불확실한 경우에도 그렇다. 각 경제주체들이 재정 지원 혜택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경쟁하는 배경이다. 기득권 지키기는 물론이다. 따라서 명확한 효율성 평가기준이 없으면 매몰비용이 증대하는 등 낭비 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 ‘뉴 노멀’ 출현에 대비한 단기·장기 평가기준 구분이 미흡할 경우 더욱 그렇다. 위기 이전보다 더 퇴보한 만성적 정부 실패로 끝날 수 있다. 경제주체들의 이기적 행동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한국판 뉴딜 정책은 2025년까지 76조원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경기 회복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인 ‘그린 뉴딜’은 2022년까지 13조원을 투자해 녹색 인프라와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을 꾀한다.

그런데 이런 ‘그린’ 전략에 대해서도 일부 환경단체는 불만이 많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과감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유럽연합(EU)도 탄소세 도입 이후 2050년께나 가능하다는 탄소 순(純)배출량 제로(0) 대책의 시행까지 요구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 등 기득권을 고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기득권자 행태로, 대형 위기의 초기 대응과 경제회생 지원 차원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모든 위기극복에 필수적인 에너지 안정공급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속·화학 등 우리 주력산업의 에너지 투입은 선진국의 두 배 수준이다. 국제 경쟁력을 고려하면 당분간 크게 개선하기는 힘들다. 주거·교통 부문 에너지효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탈(脫)원전 정책을 접고 주종 에너지산업 효율화에 지원을 늘리는 것이 ‘포용적 뉴딜’ 원칙에 부합한다. 1분기 4조원의 적자가 쌓인 국내 정유산업을 살리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결과도 확실치 않은 그린 뉴딜이란 ‘이념적 사치’에 매몰돼 있어선 안 된다.

게다가 앞으로 지속·강화될 신재생발전은 2034년 전체 발전의 40%에 이르게 되는데 이 중 태양광 등 출력변동설비가 90%를 점유한다. 따라서 가스발전 등 비(非)청정설비를 증설해 출력변동에 대비해야 한다. 이는 그린 뉴딜 정책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신재생 확대의 변동비 부담은 매년 최소 20조원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더욱이 그린 투자의 대부분은 기존 사업 경영 지원과 해외기자재 수입에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용증대 등 뉴딜정책 효과는 생각보다 작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2차 대유행에 대비해 그린 뉴딜 정책은 재평가해야 한다. 이념은 빼고 국리민복(國利民福) 기여 기준으로만 평가해야 한다. ‘그린’ 전략만 강조되고 ‘뉴딜’ 전략이 미흡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