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코로나 겪고도 '에너지 안보' 도외시한 전력 계획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20. 5. 13.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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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準국산 에너지' 원자력 외면하고 LNG 의존 높인 전력 계획
국민이 낸 전기 요금 외국 유출 부추기고 위기 대응력은 손상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20년 전 안보미가(安保米價)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새만금 개발 논란 때 간척 찬성파에서 들고나왔다. 1973년 세계 쌀 생산량이 약간 줄었는데 국내 쌀 가격이 두세 배 폭등했던 예를 들며 쌀 생산의 안보적 가치를 주장했다. 간척 논의 경제성 평가를 할 때 쌀값을 시중가격보다 훨씬 높게 쳐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 발상에 음미할 부분이 있다는 걸 코로나 사태가 일깨워줬다.

코로나 여파로 일부 식량 수입국이 곤경에 빠졌다는 보도들이 있었다. 각국의 항만 봉쇄, 이동 제한 등 조치로 물류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 끊겨 수확을 못 하는 선진국도 있다. 식량 수출국들이 수출 제한 조치도 취했다. 식량 공급 단절은 기초 생존 조건을 위협한다. 감염병보다 끔찍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세계가 아슬아슬한 분업 네트워크의 균형 위에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각국을 엮어놓은 생산·공급 사슬의 어느 한 군데가 끊겨 나가면 전체 작동이 멈춰버린다. 마스크는 1달러짜리 싸구려 제품이지만 선진국들은 체면 불고하고 쟁탈전을 벌였다. 병원들은 개당 수천만원씩 하는 인공호흡기를 창고에 쌓아놓고 있지 않다. 꼭 필요한 만큼만 구입해 운용해왔는데, 코로나로 수요가 폭발하자 구할 곳이 없었다. 음압 병실은 설치하는 데 2억5000만~3억1000만원이 든다. 언제 활용할지 기약이 없는 시설을 자발적으로 설치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백신과 치료제도 시장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백신 개발은 최소 5년이 걸린다. 수천억원 들여 백신을 완성했을 때 해당 질병이 여전히 유행하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백신은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맞으면 끝이다. 그에 비해 고혈압·당뇨병은 평생에 걸쳐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고, 심장병·인공 관절은 시술 한 번에 수천만원이 든다. 제약 회사나 병원이 감염병에 각별한 관심을 갖길 기대하긴 어렵다.

위기(危機)는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한번 터지면 큰 고통을 준다. 최대한 피해야 하고, 터지더라도 대처가 가능하게 제도적·물질적 면역력을 갖춰놔야 한다. 수십 년간 전쟁이 없었어도 무기·병력엔 예산을 아끼지 않는 법이다. 문제는 오랫동안 위기를 겪은 적이 없으면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둔감해진다는 점이다. 이런 '시장의 무능'은 정부가 교정할 수밖에 없다. 유람선 회사가 구명정 비치를 기피하면 정부가 강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역시 발생 가능성 낮은 미래 위기 대비에는 큰 관심이 없다. 돈과 노력을 쏟아 위기를 예방했다 쳐도 그 결과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유권자들 박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보다는 위기 발생 후 요란한 수습이 훨씬 주목도가 높다. 트럼프는 코로나 사태를 망쳐놓고도 국민에 뿌리는 지원금 수표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

코로나는 '방역 안보'의 소중함을 가르쳐줬다. '수자원 안보' '에너지 안보'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4대강 보(洑)를 거론할 때는 보의 홍수 조절, 가뭄 대응 등 '위기 대응력' 가치를 충분히 평가해줘야 한다. 에너지 선택에도 안보적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 8일 발표된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34년까지 원전은 현재의 25기에서 17기로, 석탄 발전소는 60기에서 30기로 줄인다고 한다. 대신 폐기될 석탄 발전 설비 중 24기는 LNG(액화천연가스)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석탄 발전 감축은 온실가스·미세 먼지 때문에 절박한 과제다. 그 공백을 원자력으로 메우느냐 LNG로 메우느냐가 문제다. 원자력 발전 연료인 우라늄은 수입선이 다변화돼 있어 공급이 안정적이다. 원자로에 한 번 장전하면 3년을 간다. 국내 우라늄 공급 회사는 2년치를 비축하고 있다. IMF 외환 위기 때도 원전은 비축 우라늄 덕분에 환율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값싼 전기를 공급해 경제 회생의 디딤돌이 됐다. 반면 LNG는 수급 불안정이라는 약점이 있다. 국제 정치의 파고에 따라 가격 등락폭도 크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유럽은 수시로 러시아 변덕에 휘둘려야 한다.

원자력은 발전 단가가 LNG의 절반밖에 안 된다. 발전 단가 중 수입 우라늄 원료 비율도 8%에 불과하다. 발전소도 국내 기업이 짓고 국내 기술자가 운영하는 사실상 국산(國産) 에너지다. 가스 발전은 발전 단가 중 수입 LNG 연료 비율이 80%에 달한다. 국민이 내는 전기료 상당 부분이 외국 기업 주머니로 간다. 석탄만큼은 아니더라도 온실가스에다 미세 먼지 원료인 질소산화물까지 배출한다. 결론적으로 ‘탈원전, LNG 의존’ 전력 계획은 기업·가계에 부담이 되고, 달러를 유출시키고, 국민 건강에 해롭고, 유사시 에너지 위기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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