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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유가 따라 전기요금 움직인다면

입력 : 
2020-04-29 00:07:01
수정 : 
2020-04-29 0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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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원유가격 급락세 지속
정유사 실적엔 부정적이지만
기업·가계 전력비용 줄일 기회
연료비 연동제 도입 결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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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폭락했다. 지난 20일 뉴욕 원유 선물 시장에서는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37.63달러에 마감하는 등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대 가격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세계 원유 수요 급감에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간에 유지됐던 'OPEC+' 체제 와해 및 이에 따른 증산 돌입으로 연초 배럴당 60달러대였던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대로 곤두박질쳤다. 원유 저장시설 부족 등에 따라 원유 공급자가 인수자에게 오히려 돈을 주고 원유를 건네주는 꼴이 된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들이 하루 970만배럴의 원유 감산에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공급과잉 해소엔 역부족이고 따라서 최근 유가가 약간 반등하기는 했지만 저유가 기조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원유를 연간 10억배럴 정도 수입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떨어질 때마다 100억달러의 원유 수입 금액이 절감될 수 있다. 유가 하락은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시키고 일반 국민의 유류 소비 부담을 줄여 생활형편을 낫게 할 수 있다. 반면 주요 수출품인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금액이 감소하고 정유사 실적이 악화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하에서 유가 하락에 따른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하고 부정적 측면은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로 국민에게 필수 지출 항목인 전기요금을 유가 변동과 연계하는 연료비연동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화력발전용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의 가격이 변동할 때 이들 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신속히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과 같은 대외 변수 변화에 따라 연료비가 대폭 하락할 경우 이를 즉시 반영해 소비자가 전기요금 인하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물론 반대로 연료비가 상승할 때는 그에 맞춰 전기요금을 올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료비연동제다.

한국전력은 2011년 전기요금 연료비연동제를 처음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유가가 급등세로 돌아서자 물가 안정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제도가 폐지되고 말았다. 만일 이 제도가 지속적으로 시행됐더라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유가 하락기에 소비자들은 전기요금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요금 연동제가 국내 공공부문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98년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환율과 연료 가격이 불안정해 공공부문으로까지 이 영향이 파급되자 정부는 1998년 1월 열요금에 '연료비연동제'를, 같은 해 8월에 가스요금 '원료비연동제'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열요금과 가스요금이 모두 국제 LNG 가격에 연동돼 주기적으로 원료비의 변동이 소비자요금에 자동 반영되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전기요금에 연료비연동제가 도입되면 국가적으로는 가스 등 에너지원 간 상대적인 가격 왜곡이 방지되고 비효율적인 대체소비를 억제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은 원가 변동에 대한 예측력을 제고할 수 있어 사업 리스크를 줄이고, 요금 변동에 따른 합리적 소비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앞두고 서민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공공부문에서부터 민생 안정을 위해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연료비가 줄든 늘든 그 변동 요인을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한전의 경영 불안정성이 확대될 뿐 아니라 국민도 요금 조정에 따른 합리적인 전기 소비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사상 초유의 저유가 시대를 맞은 현시점이 전기요금 연료비연동제 도입의 적기다. 정부는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되며, 신속한 결단력을 발휘해줄 것을 주문한다.

[온기운 객원논설위원·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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