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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찔린 데 빨간약 발라준 정부…탈원전 직격탄 두산重 1조 수혈로 끝날까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20.04.13 07:05:01
  • 최종수정 : 2020.04.19 07:47:31
‘정부가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마치 칼 찔린 데 빨간약 바른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에 1조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탈원전으로 두산중공업 주력 사업이 어려움에 처한 만큼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의견이 적잖다.

정부가 두산중공업에 1조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사진은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정부가 두산중공업에 1조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사진은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산업·수출입은행 긴급 대출

▷두산 주식 등 담보로 1조원 지원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최근 두산중공업에 1조원 규모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부족 상황에 직면한 두산중공업에 계열주, 대주주(두산) 등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채권단이 긴급 운영자금 1조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대출을 받는 대신 두산그룹은 계열사가 보유 중인 1조2000억원 상당의 두산중공업 주식과 부동산(두산타워) 신탁수익권 등을 담보로 제공한다.

정부가 긴급자금 지원에 나설 만큼 두산중공업은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4952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8년(-7251억원)에 이어 2년 누적 순손실이 1조원을 넘을 정도다.

상황이 악화되자 두산중공업은 만 45세 이상 직원 2600여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받기로 했다. 명예퇴직자의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24개월 치 월급을 지급한다. 두산중공업 측은 “수년간 세계 발전 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국내 시장 불확실성으로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임원 감축, 유급순환휴직, 계열사 전출, 부서 전환 배치 등의 노력을 했지만 인력구조 재편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녹록지 않자 최근에는 유휴인력에 대한 휴업까지 검토 중이다. 정연인 두산중공업 사장은 지난 3월 1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두산중공업지회 측에 경영상 휴업을 위한 노사협의 요청서를 보냈다. 정 사장은 요청서에서 “고정비 절감을 위한 긴급조치로 휴업을 실시하고자 한다. 더 이상 소극적인 조치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보다 실효적인 비상경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노조는 사 측 요청을 거부한 상태다. 휴업 대신 오너가 사재 출연, 사내유보금 사용, 지주사 지원 등을 통해 경영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 노사 갈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급기야 정부가 부랴부랴 1조원 자금 지원에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산중공업은 금융권에서 빌린 총 4조9000억원 중 4조원을 연내 갚아야 한다. 회사채 등 차입금 1조2000억원도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한다.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중공업 핵심 사업이 사실상 벽에 부딪힌 것도 문제다. 두산중공업 실적 부진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원전 프로젝트 수주까지 급감한 영향이 크다. 정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원전,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10조원 규모 원전 수주 물량이 증발했다. 총 사업비 8조2600억원에 달하던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이 중단되고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도 멈추면서 일감이 사라졌다.

2016년까지만 해도 8조원이 넘던 두산중공업 신규 수주 물량은 지난해 말 2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원전 공장 가동률도 2018년 82%에서 지난해 50%대까지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두산중공업 원전 공장 가동률이 올해 10% 미만까지 추락할 것으로 우려한다.

두산중공업은 부랴부랴 가스터빈, 수소 사업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는 쪽으로 선회했다. 최형희 두산중공업 대표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가스터빈, 수소, 3D 프린팅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23년까지 신사업 수주 비중을 5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기간에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가스터빈은 글로벌 기업이 사실상 독점해 진입장벽이 높은 데다 기술 개발,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두산그룹까지 불안

▷두산건설 매각 검토 중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두산그룹 고민도 커졌다. 두산그룹이 계열사 부실로 위기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에도 두산건설 부실로 어려움을 겪었다. 두산건설이 경기 고양시 탄현동에 준공한 2700가구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일산두산위브더제니스가 대규모 미분양을 맞으면서 경영난에 처했다. 당시 두산그룹은 두산건설과 두산인프라코어를 거느린 중간지주사 격인 두산중공업을 활용해 두산건설 지원에 나섰다. 유상증자와 현물출자 등을 통해 1조7000억원가량을 두산건설에 지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량 계열사 두산중공업이 버티기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두산중공업까지 위기에 빠지면서 두산그룹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월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의 신용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적과 재무 상태가 악화된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원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심원섭 케이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그룹 허리 역할을 해야 하는 두산중공업 실적 부진은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논란이 커지자 두산그룹은 두산건설 매각까지 검토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최근 두산건설 매각을 위한 투자 안내서를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기간 적자에 허덕이던 두산건설은 지난해 상장폐지돼 두산중공업 자회사가 됐다. 두산그룹이 두산건설 매각 카드를 꺼낸 것은 정부 지원과 맞물려 두산그룹 차원에서도 설득력 있는 자구안을 내놔야 한다는 위기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다만 두산건설이 매물로 나오더라도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인 대우건설 매각이 불발될 정도로 국내 건설 경기가 침체된 만큼 부실 건설사로 불리는 두산건설을 인수할 만한 후보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두산건설 이외 다른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두산중공업 측은 “두산건설 매각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에서는 탈원전을 강행한 정부가 두산중공업을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논란도 적잖다.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채권은행들은 4월 말~5월 초 두산중공업 정밀실사를 진행해 자율협약뿐 아니라 워크아웃 등 가능한 구조조정 수단을 검토할 예정이다. 실사 후 추가 자금 지원으로 두산중공업 정상화가 가능할지, 또 다른 조치가 필요할지 결론을 내겠다는 의미다. 특히 KDB산업은행은 “경영 정상화가 안 되면 대주주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압박했지만 재계에서는 무작정 경영 실패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산중공업 노조와 창원상공회의소는 최근 ‘지역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지켜주십시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간절히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까지 내놨다.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 중단으로 생산해놓은 제품가치는 고스란히 비용으로 전락했고, 분주히 돌아가던 사업장의 열기는 임직원들의 한숨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두산중공업 협력사들도 몇 년 새 일감이 절반가량으로 줄어 고사 위기에 처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 생산업체인 만큼 정부가 강조해온 해외 원전 수출을 위해서라도 과감한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3호 (2020.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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