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일하던 원전 협력사 "지금 8명 남았어요"

[탈원전 2년반 창원 가보니… 안부 인사가 "공장 문 언제 닫아요?"]

두산重 협력사 작년 매출액, 2016년보다 30% 줄어
신규 원전 6기 건설 백지화로 경남·창원 고용 감소도 가속



두산중공업에 원전 주(主)기기(원자로·터빈 등) 부품을 납품하는 원전 협력업체들의 작년 매출액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도입 전인 2016년보다 30%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업계 등에서 '탈원전으로 원전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실태가 구체적 수치로 처음 드러난 것이다. '한국 원전의 메카' 경남 창원 지역에서는 중소 협력업체들이 고사(枯死)하고 있다. 한국 원전 산업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추는 데 30년 이상 걸렸지만, 붕괴하는 데는 3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탈원전 3년도 안 돼서 협력업체 매출 30% 감소

5일 미래통합당 윤한홍 의원이 원전업계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원전 주기기 부품을 만드는 500여 핵심 협력업체가 두산중공업에서 수주한 금액은 2016년 3700억원에서 지난해 2600억원으로 30% 줄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탈원전·탈석탄으로 인한 두산중공업의 미래 수익 상실 규모는 10조원에 이른다.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신규 원전 6기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7조~8조원의 매출이 사라졌고,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원전에 들어갈 주기기 사전 제작과 설비투자비 등으로 7000여억원을 이미 투입했다. 당초 석탄화력발전 시설을 짓기로 했던 사업이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으로 전환되면서 또 2조~3조원의 기대 수익이 사라졌다.



두산중공업 공장이 있는 경남 창원시와 인근 경남 지역경제의 매출 타격·고용 감소도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윤 의원에 따르면, 경남 소재 270여 원전 협력업체의 매출은 2016년 16조1000억원에서 2018년 10조4000억원으로 35%, 고용 인원은 2만3000명에서 1만9700명으로 14% 감소했다. 창원시 소재 170여 원전 협력업체의 매출은 같은 기간 14조5000억원에서 8조9000억원으로 38%, 고용원은 1만8500명에서 1만5800명으로 15% 줄었다. 탈원전으로 수주 감소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수치는 더 악화됐을 것으로 보인다.

◇"공장 문 언제 닫느냐"가 일상 인사말



"어느새 '공장 문 언제 닫아요?'가 안부 인사가 됐습니다."

지난 2일 경남 창원 의창구의 원전 협력업체인 성일 엔지니어링에서 만난 김모 이사는 "요즘 원전 협력업체 사람끼리 만나면 이런 자조(自嘲) 섞인 안부를 묻는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공장 설비 6대 전체는 전원 스위치가 꺼져 있었다. 김 이사는 "원전 사업이 한창일 땐 기계 1대당 1명씩 맡아 공장 작업자만 6명, 전체 직원이 23명이었는데 지금은 공장 작업자는 1명, 전 직원은 8명으로 줄었다"며 "현재 매출은 2017년의 20% 수준으로 5분의 1토막 났다"고 했다.

창원 진북일반산업단지에 있는 또 다른 원전 협력업체 S 정밀도 마찬가지였다. 노즐·너트 등 원전에 들어가는 중소형 특수합금품을 정밀 가공하는 이 회사는 원전산업이 잘나가던 2015년, 창원 시내(300평)에서 현 위치(1650평)로 옮겨 다섯 배 이상 큰 공장을 짓기로 하고 은행 등에서 50억원을 빌렸다. 이 업체 관계자는 "그때는 정부가 원전을 계속 짓겠다고 하던 때라 사업을 확장하는 게 당연해보였다"며 "원전 산업이 이 지경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했다. 원전 관련 매출이 전체의 90% 이상인 이 업체는 신고리 6호기에 들어가는 부품 납품이 끝나는 오는 6월 이후 원전 일감이 '0'(제로)가 된다.원전 업계에선 내년이 최악의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되는 신고리 5·6호기 주기기 제작이 올해로 대부분 끝나기 때문에 두산중공업과 협력업체들은 내년부터 일감이 뚝 끊긴다.

두산중공업의 협력업체인 세라정공은 2009년 미국 세코야 원전을 시작으로 신고리, 신한울, UAE 바라카, 중국 하이양 원전 등 20기가 넘는 국내외 원전에 납품해온 업체다. 이 업체의 지난해 매출은 20억원으로, 2017년(40억원)의 절반으로 줄었다. 김곤재 세라정공 대표는 “눈에 보이는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라며 “각 원전 협력업체가 갖고 있는 뛰어난 기술 경쟁력이 탈원전으로 사라져버릴 위기에 놓인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가 탈원전으로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실직자가 양산될지 가늠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이제라도 방향을 돌리지 않으면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던 한국 원전 산업은 곧 뿌리째 뽑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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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묵 기자 창원/이순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