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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탈탄소화 시급한데 한국은 탈원전 조급증

김윤진 기자
입력 : 
2017-11-27 17:42:13
수정 : 
2017-11-27 19: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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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중 CO2농도 역대최고…지구 온난화→이상 기후→기후난민·기후시스템 붕괴
탈원전, 글로벌 탈탄소화 역행
韓, 獨보다는 스위스와 유사…신재생에너지 기반 취약한 스위스 30년 장기 탈원전 선택
IBS 기후변화 국제콘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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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이든, 신재생 에너지든 각국 사정에 맞는 대안을 선택하더라도 모든 에너지 정책 우선순위는 '탈(脫)탄소화'가 돼야 한다." 27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한국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 변화와 인류 이동 콘퍼런스'에 참석한 지구 온난화 분야의 세계적 석학 토머스 스토커 스위스 베른주립대 교수는 "탈원전과 탈탄소화 중 더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스토커 교수는 2013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차 회의에서 전 지구적 탄소 감축 협력이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인물이며 세계 최고의 기후·환경물리 분야 전문가다. 스토커 교수는 "21세기 중반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완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1900~2000년 100년간 19㎝ 상승한 해수면이 향후 100년간은 70㎝가량 치솟으면서 전 지구적 기후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탈원전 조급증이 자칫 세계적인 탈탄소화 흐름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원자력 에너지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대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토커 교수는 "탈원전에 접근할 때는 원자력이 현재 국가 전력 수급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기여도를 잘 따져봐야 한다"며 "독일의 경우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전력 공급 체계가 탈중앙화돼 있어 급격한 탈원전을 택할 수 있었지만 스위스는 신재생 에너지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에 30년간에 걸친 탈원전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탈원전과 관련해 한국 사정이 독일보다는 스위스에 가깝다고 말했다. 스토커 교수는 "스위스의 경우 낙후된 원자력발전소들을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는데 한국도 이처럼 연착륙하면서 신재생 에너지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시간을 벌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콘퍼런스 연사로 나선 또 다른 세계적 석학 애덤 로스 사우스캘리포니아대 교수 역시 "원전이 100% 청정 에너지도 아니고 물 오염이나 환경에 미치는 비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지만 화석연료 대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스토커 교수는 기계화·전기화·디지털화를 잇는 4차 산업혁명 핵심 축이 '탈탄소화'라고 강조했다. 스토커 교수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기도 하지만 단순 기술 혁신이 인류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산업계가 과거 250년간 의존했던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에너지원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바로 진정한 혁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스위스같이 혁신을 기반으로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많은 나라가 탈탄소화 혁명을 이끄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가 심해질 경우 인류 대이동과 같은 재앙이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도 쏟아졌다.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연구단장은 "최근 전 세계적인 폭염과 한파, 홍수와 가뭄 등 이상 기후가 전부 인간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팀머만 단장은 "해수면 상승으로 남태평양에 홍수가 발생하면서 기후 이주민들이 벌써 나오고 있고 주거지를 잃은 기후난민 이동이 중동, 지중해 아열대 지방, 소규모 섬들, 방글라데시 등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맥신 버킷 윌리엄 리처드슨대 교수도 "지금 허리케인발 홍수로 섬 전체가 마비된 푸에르토리코처럼 기후 변화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거나 물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한 미국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버킷 교수는 "멕시코 가뭄 때문에 미국으로 기후 이주민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미국은 당장 이민 문제와 직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상기후를 부추기며 탈탄소화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토커 교수는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무책임의 극치고, 리더십 역할을 못하면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 역할을 미칠 것"이라며 "지난 3년간 매년 인간 활동으로 인해 360억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반면 엘니뇨와 라니냐 같은 자연적인 기후 변동성에 따른 배출량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기상관측기구(WMO)에 따르면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지난 80년간 농도가 최소 30% 이상 증가했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부산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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