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연구소장
![[포럼]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뚫는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11/2017112302102251607001[1].jpg "[포럼]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뚫는다")
이는 원래 지혜롭게 준비해 어려운 일을 면한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전을 가동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문제도 이러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세기의 방사선을 오랜 기간 동안 방출하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안이 없다며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안은 마련되고 있다.
원자력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고민해왔으며, 다양한 기술개발을 통해 자기 나라에 맞는 해법을 찾았다. 미국, 스웨덴, 핀란드 등 국토가 넓은 나라는 사용후핵연료를 일정 기간 저장한 이후 배출된 상태 그대로 지하 깊은 곳에 묻는 방식을 채택했다. 반면에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일본과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 중 유용한 물질을 골라내어 여러 번 재활용함으로써 폐기물 양을 최소화해 처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리나라도 이제 우리 상황에 맞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식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산업활동과 국민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수의 원전을 운영해 왔으며, 사용후핵연료는 최소 3만6000톤 정도로 추산된다. 이를 가장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으로 해결하는 기술적 방식은 무엇일까?
우선, 핀란드나 스웨덴처럼 재활용하지 않고 지하 500m 깊이에 묻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여유 면적을 포함해 대략 10㎢ 넓이의 처분 부지가 필요하다. 여의도 3배 이상의 넓이의 치밀하고 견고한 암반이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두 번째 방식은 중간저장 시설을 건설해 사용후핵연료에서 발생하는 열과 방사선이 줄어들 때까지 장기간 저장하는 것이다. 장기 저장 이후 처분을 하면 처분면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저장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고 최종 처분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면 저장기간 장기화에 대한 지역의 반발이 우려된다.
세 번째 방식은 원자로에 다시 재사용함으로써 방사성독성과 폐기물 부피를 줄인 후 처분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처분되는 사용후핵연료 규모를 가장 많이 줄일 수 있지만 기술적 불확실성이 높은 것이 단점이다.
사실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식의 결정은 이러한 기술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 시설이나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설입지 지역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민감한 기술을 적용하여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이해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첫 번째 해법은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술이 없는 대안에 대한 논의는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방식의 기술이 균형 있게 개발돼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기술방식만을 선택하여 집중하기에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사회적, 기술적 환경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풍훤은 맹상군의 영지에 제나라의 종묘를 세우게 하여 제왕의 마음이 변하더라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것으로 세 번째 굴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 없이 주무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후손들이 근심 없이 살 수 있도록 사용후핵연료 기술개발에도 이러한 지혜가 필요하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