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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원전 없이 온실가스 감축 불가능…꼬여버린 에너지정책

석민수 기자
입력 : 
2017-11-13 17:44:35
수정 : 
2017-11-13 20: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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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추진했던 선진국들은 돌아서는데…
◆ 탈원전에 발목잡힌 탄소배출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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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는 2025년까지 원전 비중을 50%로 줄이기로 한 기존의 원전 감축 계획을 조정하기로 했다. 원전 비중을 급격히 줄이는 동시에 탄소배출량 목표까지 달성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7일(현지시간) 니콜라 윌로 프랑스 환경장관은 현실과 직면한 정책집행자로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원전 비중 감축 목표는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을 늘리지 않는 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며 "목표를 현실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전 강국인 프랑스는 지난 7월 58기 원자로 가운데 17기를 2025년까지 폐쇄한다는 로드맵을 마련했다. 하지만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탈석탄과 원전 감축 정책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넉 달 만에 입장을 바꿨다.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도 사실 마찬가지 입장이다. 탈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전을 포기하고 LNG 등 다른 화석연료를 늘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주요국이 원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 때문이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원전은 1kwh당 12gCO2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석탄화력(820gCO2)이나 LNG(490gCO2)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배출량이 적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한국은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량을 줄이는 게 필수적이다. 2006년 기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26%를 발전 부문이 차지하고 있고 이 중 대부분은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해 발생한 탄소다.

정권의 입맛대로 탈원전과 탈석탄을 마구잡이로 추진하면서 국가의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이 5년 단위로 널뛰기를 한다는 지적이 이 때문에 나온다. 탈원전 시나리오에 맞춰 미래의 전력 수요를 낮게 책정하는 등 정부 스스로 정책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는 얘기다.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사실상 원전을 LNG 발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간헐성이 큰 신재생에너지의 기여도를 보수적으로 책정해 원전이 차지하던 발전 비중 대부분은 LNG 발전에 메우게 된다.

친환경·신재생에너지로 전환을 꾀하면서 오히려 탄소배출이 늘어나는 역설에 직면했다. 원전을 활용하면서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는 영국이 꼽힌다. 영국은 1990년대 원전 비중을 줄였다가 에너지 공급의 변동성이 커지자 2005년 원전 비중을 다시 높였다. 원전을 통한 안정적 전기 공급을 바탕으로 2000년대 석탄화력의 감축을 시작했고 2025년까지 탄소저감시설(CCS)이 없는 석탄화력발전소의 문을 모두 닫기로 했다.

탈원전을 추진하던 스웨덴도 기존 원전 폐기 정책을 번복한 나라 중 하나다.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로 2020년까지 원전을 모두 없애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2010년 원전 폐기 법안을 뒤집었다. 2014년에는 과거 탈원전 공약을 내걸었던 사민당이 집권했지만 노후 원전을 멈추고 그 용지에 최대 10기의 신규 원전을 짓겠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탈원전은 바람직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제18회 세계지식포럼을 찾았던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에너지 전환 국면에서 환경적 지속 가능성, 에너지 안보, 경쟁력 등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 에너지믹스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탈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은 (전기요금 인상과 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현명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IEA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률은 19%로 주요국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에너지 자급률은 1차 에너지 공급 중 국산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이 현 수준의 에너지 자급률을 유지하는 것은 원전 때문이다. 에너지 수급 상황이 비슷한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계획을 가동하면서 자급률이 7%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여전히 원전 비중이 높은 스웨덴, 영국, 프랑스 등은 자급률 50%를 넘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이 전시(戰時) 등 대내외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수급하는 능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원자력발전은 국내 보관 중인 원료 비축량이 비교적 많지만, 현 정부가 원전 대체 수단으로 고려하는 LNG는 보관이 어려워 자체 비축량이 적은 데다, 유사시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아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도 어렵기 때문이다.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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