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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왜곡된 전기요금 언제까지 놔둘 건가

입력 : 
2019-11-06 00:07:01
수정 : 
2019-11-06 17: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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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전기요금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데다 요금이 비용을 적기에 반영하지 못하며 용도별 요금 격차가 심하고 복지할인이 남발되고 있다. 전력산업은 외부성을 갖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발전 과정에서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송전선로에 의한 피해나 사고위험 등과 관련된 외부비용을 발생시킨다. 문재인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가격 변동은 물론 각종 외부비용 요인을 요금에 반영하는 것을 사실상 막고 있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구입한 전력 비용은 2017년과 작년에 각각 46조3596억원, 52조4352억원으로 전년비 7.7%, 13.1% 증가했다. 연료가격 상승과 원전이용률 하락 때문이다.

연료개별소비세와 신재생공급의무비용, 배출권 비용 등 외부성을 억제하기 위한 제세부담금도 작년에 6조8000억원에 달했으며 매년 1조원씩 늘고 있다. 비용은 급증하는데 요금은 묶여 있으니, 한전의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당연하다. 전기요금이 비용 이하로 낮게 유지될 경우 전기 과소비가 야기되고 외부비용 발생으로 국민 전체의 후생이 감소한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대규모 기업농이 값싼 농업용 전기를 쓰는 것도 문제다. 자산 규모 재계 26위인 하림이나 현대서산농장, 신세계푸드, 아모레퍼시픽 등이 원가의 30%를 조금 넘는 kwh당 47원의 전기를 쓰고 있다. 농업용 호수의 0.4%에 불과한 대규모 기업농이 농업용 전기사용량의 39%를 차지하는 등 기업농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 주택용 요금도 원가의 70%에 못 미친다. 산업용 요금은 원가에 근접해 있지만 심야에 적용되는 경부하요금은 kwh당 평균 56원으로 중간 부하 대비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복지할인이 남발되는 것도 문제다.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대가족, 출산가구 등에 적용되는 복지할인 규모는 제도가 도입된 2004년의 229억원에서 작년에는 5540억원으로 23배나 증가했다. 할인의 필요성은 인정되나 할인 부담을 한전이 모두 떠안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는 복지 정책 차원에서 정부의 재정이나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취약계층의 전기요금 할인에 재정 및 기금을 활용하고 있다.

월 200kwh 이하의 전기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해 요금을 주택용 요금의 62%인 65원을 적용하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제도'는 저소득층보다 1~2인 중위소득 이상 가구에 지원액(작년 3964억원)의 98%가 집중되고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지원액은 2%에 그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전기차 충전전력에 대한 특례요금할인도 작년에 각각 1831억원, 188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무분별한 요금 할인이 한전의 실적 악화를 부추기고 있음은 물론이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급기야 일몰이 도래하는 특례할인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에 못마땅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전의 신뢰도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24일 한전의 독자 신용등급(정부 지원을 고려하지 않은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 바로 위인 'BBB-'로 낮췄다. S&P는 "계속되는 발전 원가 부담에도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가 향후 12∼24개월 동안 크게 변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등급 강등 이유로 꼽았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 강등될 때마다 한전의 금융비용은 약 1000억원씩 늘어난다.

한전 지분의 49%를 가진 소액주주들은 실적 악화에 대해 한전 경영진을 배임행위로 고소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전은 공사이면서도 엄연한 주식회사이다. 공익성 못지않게 수익성도 보장돼야 마땅하다. 에너지 절약과 온실가스 감축 등 국가 차원에서도 요금 현실화는 시급한 일이다.

[온기운 객원논설위원·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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